이경자 정의당 지역위원장

▲ 이경자 정의당 지역위원장

지난주 세계여성 폭력 추방의 날을 하루 앞두고 구하라씨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친구인 설리의 죽음 42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죽음이 전 애인과의 법적 공방 과정에서 발생한 2차 피해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구하라씨는 재판 과정에서 범죄 그 자체 보다 동영상의 유무를 궁금해 하는 과도한 호기심에 의한 성희롱을 온라인상에서 받아왔기 때문이다. 즉 여성의 성과 인권에 대하여 1대 다수의 무차별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미투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광장에서 여성들의 외침이 있었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이 당한 피해를 사실대로 말했지만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처참하기만 하다. 범죄의 책임은 명백히 가해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럴만한 원인은 여성이 제공했을 것이라는 되물음이 돌아온다.

피해자다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납득할만한 피해자인가에 대해 평가하는 문화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피해자가 순결한가?”, “피해자다운 모습은 하고 있는가?”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여성이 성폭력 범죄 피해를 당한 이유는 여성이 빌미를 제공함, 순결하지 않고 도덕적이지 않음, 문란한 사람, 여성이 충분히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또한 피해를 당했으니 당연히 수치심을 느끼면서 울며불며 세월을 허송해야 하고, 고통에 시달려 일상생활을 포기 할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한국 사이버성폭력 대응센터, 디지털 성범죄 대응교육안, 2018). 이와 같은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은 피해자를 더더욱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덫과 같아서 피해자에게 회복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래서 구하라씨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젠더의 이슈화는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 중에서 20만명 이상 동의를 얻어 청와대 답변이 이루어진 청원의 40%, 1만명 이상 동의를 얻은 청원의 25%는 젠더 이슈였다. 다시 말해 젠더이슈는 지난 2년 동안 한국 사회의 핵심 현안이자 국민적 관심사였다는 것이다. 2018년에 이루어진 통계청조사 자료를 참고해 보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이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여성이 50.9%, 남성40.1%로 여성이 남성보다 10.8%포인트 높았다. 여성 2명 중에 한명은 우리사회에서 ‘불안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주요 범죄 가운데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이 2만 9272명으로 남성 피해자보다 16배 많은 수치로 나타났다. 이 결과로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하나를 더하여 지난 5월에 발생한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등 최근 1인 여성 가구 대상 범죄사건 또한 증가하고 있으며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은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성안전은 여전히 뒷전인 현실을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 국회에서는 20년째 스토킹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1999년 처음 발의)이 폐기와 계류를 반복중인 상태이다. 미투 운동이후, 성폭력 관련 법안은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유사한 입법만 더해져 국회에 쌓이고 있다. 성폭력 관련 법안으로 강간죄 구성요건을 개정하는 내용의 법안들도 2018년 3월부터 2019년 6월 까지 10개의 법안이 발의 되었으나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또한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관련 일부는 개선되었으나 변형 카메라 규제와 관련법률 등 여전히 국회에서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한다. 여성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법안 발의만 계속 할 것이 아니라 여성의 안전을 우선순위로 두고 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돌아가, 20대 여성이었던 구하라씨가 마주해야 했던 일상을 생각해 보았다. 피해 사실을 고발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악성 온라인 댓글과 비동의 불법촬영물이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등 2차 피해가 만연했음에도 연예인이기 때문에 참아야 했던 그의 버티기는 아마 또 다른 노동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안전장치도 마련해주지 못하고 또 한사람을 별이 되게 만들었다는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피해 사실을 고발한 이후에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당당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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