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일찍이 “음식으로 몸을 다스리려 하지 말고 몸으로 음식을 다스려라”라고 충고하였다. 서양의학의 선구자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했다. 오늘날 많은 식품학자들은 “내가 매일 먹는 음식이 바로 나다.”라고까지 말한다. 텔레비전에서 먹방 프로가 흘러넘치고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세계의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된지 오래다. 그만큼 일상으로 먹는 식재료와 식습관은 행복의 한 가치기준이 되고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입증되고 있다.

문제는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은 이래로 평범한 우리도 특정 식재료에 대한 과신을 갖게 되었고,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술로 우리 농산물이 전례 없이 소외받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아주 흔하게 종편에서 외국에서 생산되는 노니나 크릴새우 등이 우리 몸에 좋다고 전문가까지 동원하여 선전을 하면 같은 시간 홈쇼핑 채널에서는 온갖 감언이설로 구매를 부추긴다. 이는 국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여 특수 기호 품목을 제외하고는 취급 마진이 낮고,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쪽으로 구매 충동을 쉽게 느끼는 점을 악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전학과 생물학의 권위자로 의사이며 과학자인 팀 스펙트는 최근 저서 『다이어트 신화』에서 특정 식품을 ‘슈퍼푸드’라 선전하는 것은 거의 사기에 가까우며 사실상 모든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저마다 소중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좋은 식재료라 이야기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 의존하며 살아왔기에 조상들의 식습관이 몸에 박혔다는 것이다. 지방을 즐겨 섭취하는 크레타섬 주민, 설탕을 미국인보다 두 배나 먹는 쿠바인, 올리브와 올리브유를 자나 깨나 이용하는 지중해 연안 사람들을 예로 들며 각자의 체질에 익숙해진 개성 있는 식품들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도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땅에서 천리 이내의 식재료가 가장 좋다 하였다. 곡류를 소화하는데 유용한 염기를 섭취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콩 장류를 즐겨 섭취하고 베트남 등지에서는 젓 장류를 애써 줄기는 것 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면서 외국에서 생산되어 수입되는 과일 등에 호기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옛날 바나나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왔을 때 우리들은 바나나에 열광한 기억이 있다. 반면 한국전에 참여한 태국 군인들에게 한국을 생각하면 가장 잊지 못하고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새콤한 사과였다고 말했다 한다. 당시는 요즘 우리들이 즐겨먹는 단맛이 보강된 부사 종류가 없을 때인데도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단맛 위주의 망고를 그렇게 좋아하지만 정작 열대 과일이 풍성한 인도차이나반도 등 동남아시아의 현지인들은 과일이 달기만 하면 무슨 맛이냐는 이야기를 여행 중에 들은 경험이 생각난다. 분명한 것은 서로 의존하며 익숙해진 우리 농산물이 우리의 몸에는 최고라는 사실이다.

모처럼 밭에 나갔더니 감나무 가지가 언제부터 게으름이 그리 심해졌느냐며 이마를 치며 나무란다. 농약을 주지 않아 나무마다 겨우 몇 개씩 달려있지만 그래도 반갑다고 대봉감이 나를 반긴다. 곶감용 감이나 단감은 수확을 포기한 줄 알고 누가 따갔는지, 새들이 먹어치웠는지, 홍시가 되어 낙과가 되었는지 나무마다 빈 가지만 앙상하다. 키위는 제때 속아 주지를 않았더니 많이 달려있으나 크기가 너무 잘아 수확하기가 난감하다. 5년 전에만 해도 소두엄을 가득 담은 양동이를 양손에 들고 긴 밭 끝까지 하루 삼십여 차례를 다녔는데, 지금은 감을 겨우 두 번을 옮겼는데 숨이 차고 팔이 떨린다. 그렇게 농사에 몰입하다 글쓰기로 일상이 바뀌면서 나의 변심이 너무 심한 것도 같다. 밭둑에 앉아 작물들을 보니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할아버지와 선친의 디엔에이가 몸에 담긴 탓일까. 조금만 익숙해지면 다시 농사일을 열심히 하여도 여생을 무료하지 않게 보낼 것도 같다. 우리 농산물가격이 농민들이 생산의욕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해주는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협조가 못내 아쉽다. 작가 은유는 배가 고프면 생을 비관하게 되고, 평정심을 회복하는 데는 밥만 한 게 없다고 말한다.

식습관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몸에 가장 유익한 식습관에 관한 축약된 표현은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골고루 먹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위를 보면 움직이지 않고 수저를 드니 식욕이 떨어지고, “일하지 않은 자 먹지를 말라.”라는 말의 의미를 경제력에 두고 노동의 소중함은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턱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섬유질이 많은 거친 음식보다는 달고 기름지며 부드러운 음식을 선호하다 보니 잇몸이 나빠지고 씹는 힘이 퇴화되어 임플란트 시술이 일상화되고 치매나 대장암 등의 질병이 늘어나는 추세다. 오랜 기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온 조상들이 물려준 우리의 몸은 포만감보다는 굶주림에 더 익숙하다 한다. 다이어트라는 말의 의미에 깊은 청찰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농산물을 사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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