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광양 여자 고등학교 1학년

▲ 김민서 광양 여자 고등학교 1학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성격이 다른 여러 정당들과 그에 속해있는 국회의원들은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이념의 차이로 인해 많은 잦은 다툼을 한다. 이러한 정치적 다툼은 현대 뿐 아니라 과거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 온갖 정치적 모략과 싸움이 난무하는 궁궐에서 살며 정치적 세력 다툼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죽임을 당했던‘임오화변’이라는 사건의 전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은 새로 책봉된 사도세자를 중심으로 새 세력을 구축하여 소론을 물리치고자 했으나 세자는 이를 들어 주지 않았다. 이에 노론은 온갖 음모를 꾸며 세자를 괴롭혔다. 영조는 사랑하던 화평옹주의 죽음으로 세자에게 무관심해졌고, 세자는 공부에 태만하고 무예를 즐겨 부자간의 갈등은 깊어졌다. 마침내 영조 38년에 윤급이 나경언을 시켜서 왕에게 세자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참언하게 하였고 영조는 분노하여 결국 세자를 폐위시켜 서인으로 만든다. 세자가 영조에게 변명하였으나 영조는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세자를 결국 죽게 하였다.

조선시대 당쟁과 오늘날 정당들의 대립은 오로지 고위 관료들의 개인적인 이익과 집단주의에서 비롯된 부당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무작정 싸움을 위한 싸움만이 아니었다. 당쟁에는 나름대로 의리와 명분이 있었다. 그리고 당쟁은 조선시대의 문치주의에서 파생된 권력 투쟁의 형태로써 일정한 원칙과 틀 안에서 대립하였다.

당시 사림정치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림의 여론에 따라 권력 독점 방지를 위한 정책도 펼쳤다. 젊은 중견 관료들에게 인사권과 언론권을 부여해 부정부패를 척결한 것이다. 백성의 소리를 품은 사림들은 부정부패를 일삼는 무리들 뿐 아니라 자신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목숨 바쳐 경계하고 방지했다.

이렇게 정치적 싸움은 서로간의 견제와 권력 남용을 방지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처럼 의리와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권력 투쟁은 추악한 것이 되었다. 특히 현대에 와서 그 의리와 명분은 많이 퇴색되고 변질되었다. 당쟁이 사림 정치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당쟁이 격화될수록 부정적인 면이 많이 드러났다. 왕권이 약할수록 당쟁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되고 외척들의 세도정치가 백성을 잔혹하게 억압한 사실만 봐도 그러하다.

서로간의 견제와 다툼은 분명 더 긍정적인 결과를 위한 일련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를 지나친 행위는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만 치우쳐 극명한 이기주의로 치달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삼권분립과 같이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세 개의 기관으로 나누어 그 힘을 분리한 것처럼 적절한 균형을 위한 정치적 제도가 마련된다면 청렴한 국가와 건강한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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