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만든 산신령 이야기

구름을 타고 계족산과 백운산을 함께 건너왔던 두 산신령은 백운산 억불봉에 잠시 내려 이야기를 나눴다. 억불봉의 산세를 살피니 멀리 섬진강이 흐르다 남해와 만나니 가히 물산이 풍부하고 땅의 기운이 좋아 사람이 살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산신령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 산신족 내에서 호산이라 불렸던 산신령이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긴 하나 산의 기운을 강해 기운을 다스릴 신령이 머물러야 할 듯하니 내가 여기에 머물며 사람의 세상을 돕겠네”라며 억불봉에 거하기를 원했다.

곰의 형상을 닮아 평소에도 남의 심중을 잘 헤아렸던 웅산은 호산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옥황상제로부터 명 받은 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자란 기운을 더하거나 넘치는 기운을 눌러 인간 세상을 평안케 하라는 것이 옥황상제의 뜻이었던 까닭이다. 웅산은 호산이 억불 가운데 큰 바구니를 닮은 곳에 거처를 정하고 바위에 스며들자 곧장 구름을 타고 남해를 향해 길을 떠나왔다.

강한 기운이 일면 반드시 그 기운이 몰리거나 흐트러지기도 하는 법이 아니던가. 호산이 억불의 강한 기운을 눌러 다스리는 지세라면 기어코 기운을 담거나 빠져나가는 지세도 있으려니 했던 것이다.

억불봉 아랫자락은 과연 호산의 말 그대로였다. 백운산맥 깊은 골짜기마다 흘려보낸 맑은 물이 땅을 가로질러 흘러내리니 땅이 기름졌고 수어천 물길을 따라 너른 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땅이 넓고 사시사철 물이 흘러든 데다 바다와도 가까웠으니 물산이 얻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수어천을 조금 벗어나 남쪽 땅에 다다르니 기운이 흩어지고 음기가 강한 대신 양기는 크게 부족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마을에 다다르니 남편들은 젊어 죽고 혼자된 아낙들이 넘쳤다. 형세를 살펴보니 음기는 그릇에 담긴 듯 고인데 반해 양기는 무너진 마을 뒤편 등선을 타고 흩어져 버리는 게 아닌가.

그는 그곳에 거처를 정하고 빠져나가는 기운을 막기로 했다. 웅산은 뒤를 보았다. 멀리 억불봉 호산이 웃고 있었다. 웅산은 자신의 모습을 큰 바위를 화하여 마을을 굽어봤다. 이후로 병든 사내는 활기를 찾았고 마을엔 평화가 찾아왔다.

텃밭도서관 새 명물 ‘산신령 바위’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랑 받고 있는 텃밭도서관 서재환 관장이 또다시 일거리를 만들었다. 잠시도 손을 놓지 않고 워낙 일을 벌려 놓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 탓이다. 여름과 가을 내내 그가 한 일이라곤 텃밭 뒷산에 길을 내는 것이었다.

바로 잡목들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던 ‘산신령 바위’에게 제 얼굴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불현 듯 어릴 적 산신령 바위 주변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곳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곳을 텃밭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불처럼 용솟음친 것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조성에 평생 매달려온 그로서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던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 동안 마침내 산신령 바위로 가는 길이 뚫렸다. 장비의 수염처럼 산신령 바위를 둘러싸고 있던 잡목들도 제거되면서 웅장했던 산신령 바위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습을 드러낸 산신령 바위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을 닮았고 억불봉과 마주보며 지긋이 청암뜰을 내려다보고 있다.

서 관장의 예상대로 텃밭에서 5분쯤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산신령 바위는 아이들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잠깐이지만 운동한다는 기분으로 산을 오르고 나면 위엄이 느껴지는 산신령 바위가 바투 나타난다. 산신령 바위 주변에는 산신령을 호위하는 바위 무더기가 있어서 더욱더 신비한 분위기를 띤다.

바위 정상에 오르면 청암뜰 뿐 아니라 진상면사무소가 있는 면 소재지까지 한눈에 들어와 호방스럽기 그지없다. “우와”하고 아이들의 감탄이 터져나왔다.서 관장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셈이다. 하여 평생 그가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본 아내 장귀순 씨 역시 애써 만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순 씨는 “한 번 하겠다고 나서면 말릴 수가 없는데 어쩌겠어요. 재밌게 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냥 옆에서 뭐라도 도와줄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어요” 지청구라도 할 법하지만 속 좋게 웃는 귀순 씨다.

서 관장은 “어릴 때 친구들과 놀던 곳”이라며 “산신령 바위 주변에서 하루종일 친구들과 뛰놀던 곳이라서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아 새단장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 하나라도 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몇 분 되지 않은 곳인 탓에 부모들도 아이의 손을 잡고 오르는데 아이들 보다 더 좋아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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