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혜원 광양 여자 중학교 1학년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 손녀 혜원이에요. 할머니 잘 지내시죠? 자주 보는 듯 하지만 요즘 따라 잘 할머니 집에 안 가는 것 같아 죄송해요. 벌써 2020년이네요. 추운데 야무지게 입고 일 다니시는 거죠? 편찮으심 안 되어요! 할머니, 갑자기 편지 드려 놀라셨죠. 제가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다가 할머니 생각이 나서 쓰게 되었어요.

할머니는 증조할머니 살아 계실 때 맨날 증조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길 바라셨잖아요. 그것이 단편에 나오는 할머니네 가족들과 비슷해서 더 생각났어요. ‘할머니의 죽음’에서도 할머니네 가족들은 그분을 진심으로 걱정하긴 보다 빨리 돌아가시길 바랐거든요.

제가 읽은 책은 할머니 병세가 위독해지자 돌아가실 줄 알고 다 같이 모여서 환자를 간호하지만 이미 장례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별 증세가 없자 다시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진다는 내용이에요.

이 소설의 일가친척들은 그들의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길 바라면서 이만하면 호상이라며 그 분의 고통 같은 덴 관심도 없고 위독한데도 염려도 슬픔도 없이 허위로만 슬픈 척해요. 오히려 다른 식구들에게 좀 더 특별한 도덕적 우월감이 있는 것처럼 자신을 과시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오죽하면 제가 그 할머니네 자녀들이 지닌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나는 것 있죠.

일, 이주 정도 다시 기운을 차리셨다가 모두가 흩어져 아무도 곁을 지키지 못할 때, 화사한 봄꽃 구경으로 세상이 즐거울 때, 혼자 외롭게 돌아가신 책 속의 할머니를 상상하니까 너무 안타깝고 슬펐어요.

그런데 책에 나오는 가족들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증조할머니가 얼른 돌아가시길 바랐지만 ‘할머니의 죽음’의 가족들과는 달리 말씀만 그랬던 것 같아요. 혹시나 할머니보다 증조할머니께서 더 오래 사실까봐 걱정된 것일 수도 있구요. 지금 떠올려 봐도 증조할머니께서 싫고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고 돌봐 드리는 게 힘들다고 불만을 터트리셔도 늘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보살펴 드렸단 걸 알겠어요.

할머닌 정말 우리 증조할머니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증조할머니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도 잘 챙겨주시며 따뜻한 사랑으로 항상 좋은 것만 주시려고 해 주셔서 고마워요. 연세 많으신데 아직도 일을 하셔서 손주들 용돈 한 푼이라도 더 주시고 싶어 하시고 편찮으신데도 쉬지 않으시잖아요. 항상 자신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고 셀 수없이 걱정하고 사랑해 주셔서 고마워요.

할머니는 부모 노릇, 할머니 노릇, 며느리 노릇 다 열심히 충분히 하셨으니까 이젠 자신을 위해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할머니, 제가 할머니께 전화 올 때마다 귀찮게 생각하고 답답해서 짜증 낸 거 죄송해요. 할머니는 제가 걱정 되어서, 뭘 먹었는지, 뭐하고 있는지, 누구랑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하신 건데 할머니 마음을 너무나 몰랐던 것 같아요. 할머니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깊은 겨울밤에
손녀 혜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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