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초월 문하 입문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문화재 인정

국악계 “수궁가 중 남해성 능가할 토끼는 없다”는 찬사

▲ 남해성 선생

광양이 낳은 명창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남해성(1935년생/본명 남봉화) 명예보유자가 지난달 2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지난달 31일 치러졌다.

광양 진상면 청암마을 출신인 고 남해성 선생은 1970년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1975년 중앙국립극장 공로상, 1985년 남원춘향제 판소리 부분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로 인정받았고 지난해 9월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고인은 김소희, 김연수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웠으며, 1968년 박초월 당시 판소리(수궁가) 보유자의 문하에 입문해 수궁가를 전수받아 2012년 판소리(수궁가)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76년에는 남해성국악연구소를 개설해 후진 양성에 힘쓰는 등 한평생 판소리의 보전과 전승 활동에 헌신했다.

남해성의 삶

고 남해성 명창은 1935년 9월진상면 청암마을에서 태어났다. 강도근 명창에게 소리 공부를 시작해 1952년 국악사에 입단해 본격적으로 소리를 공부했다. 17세 때 서울에서 4년간 김소희 명창에게 흥보가 전 바탕을 전수받은 뒤 1971년 국립창극단에 입단, 82년까지 창극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다 1972년 박초월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웠다. 이 기간동안 선생은 흥보가와 춘향가 가운데 초앞에서 이별가까지, 그리고 박석티에서 어사상봉 대목까지 사사 받았으며 수궁가 전 바탕 사사받았다. 1973년에는 조상현에게 심청가 전 바탕 사사받아 명실상부하게 판소리 명창반열에 이르렀다. 선생은 선천적으로 청아한 목을 타고 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목을 걸걸하게 쓰지 않고 곱게 쓰는 게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박초월의 영향으로 그의 성음 곳곳에 이러한 스타일이 짙게 배어 있다. 남해성의 본명은 봉화인데 창극단 시절에는 남연화로 불리어오다가 서울로 올라와서부터 남해성으로 예명했다.

몸집이 작아도 재주가 비상한 데다 성음도 청미해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음악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창극단 시절인 1971년 남해성은 3.1절 행사와 8.15광복절 기념행사 공연차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를 비롯해 대도시를 순회하면서 창극 수궁가 중 꾀 많은 토끼역할을 담당했다. 그때 선생의 연기는 매우 출중했다. 얼마나 연기를 잘하였던지 지금도 “남해성 선생을 따라갈 토끼가 없다”고 할 경지에 이르렀다. 1981년 홍콩에서 개최한 제9회 아세아예술제 참가, 1976년 브리테니커홀에서 수궁가 완창발표회로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그해 선생은 국립창극단을 사퇴하고 독자적인 국악연구소를 개설해 현재까지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지난 1997년부터는 남원 국악예술고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박양덕, 김화자, 왕기석 명창 등이 그의 제자다. 선생의 가족들도 하나 같이 국악계의 거목들이다. 더 나가 3대째 국악인을 배출한 국악 내림집안이다. 선생의 평생지기는 지난 70년 작고한 한일섭 선생이다. 한일섭은 전남 화순군에서 태어났고 이동백, 박동실에게 소리를 배워 소년 명창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안타깝게 변성기에 목을 다쳐 이후 기악으로 전공을 바꿨다. 한일섭은 남해성과 결혼 후 함께 창극활동을 하다가 서울에서 가야금 제작으로 유명한 김광위 선생으로부터 아쟁을 제작 받아 제자를 길렀다. 이때 김병환, 김청만 등이 그로부터 아쟁산조를 배웠다.

특히 현 국악계 대금 명인인 이생강이 그의 집에 머물면서 그로부터 대금산조를 전수받았다. 선생과 한일섭의 예술적 끼를 타고난 아들 한세현은 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악장이며 피리의 명인으로 이름이 높다. 손녀 한미미도 할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아쟁산조를 전공, 대를 잇고 있다. 선생은 지난 198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 후보로 인정받았고, 1985년 제12회 전국판소리명창대회(1985년 남원춘향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06년 근현대 판소리를 집대성해 판소리 중흥조로 꼽히는 신재효를 기념한 재단인 동리재단으로부터 동리대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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