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진도아리랑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노란 저고리 떨어지는 눈물 내 탓이냐 네 탓이냐 중신아비 탓이다.’ 항시 고맙고 예쁜 경우 마는 없어 부부 사움을 해야겠는데 서로가 고생하는 모습이 미안하고 측은하여 차마 싸울 수 가없어 중신아비 탓으로 돌리고 만다는 뜻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 란 말도 자주 들었다. 해봐야 부질없고 싸운 후에도 큰 상처 없이 금방 화해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압축성장으로 사는 것이 나아지고 여유도 생기며 평균수명이 늘어 노년의 삶이 길어진 탓일까. 부부싸움을 넘어 이혼이 OECD 국가 중 매우 높은 편이며 인구 천 명당 2.1명, 매년 10만 건이 넘게 이혼을 한단다. 특히 결혼 후 20년이 넘어 이혼하는 황혼 이혼이 그중 3분의 1이 넘는다고 한다.

나이도 들고 명색이 글이라고 쓰다 보니 세상사는 모습에 눈길이 자주 멈추고 생각이 깊어진다. 나이가 들며 부부가 오순도순 등허리 긁어주고 웃고 살아야 할 텐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농담 같지만 아내와 자주 집에 머물면 삼식(三食)이라고 조롱당한단다. 한 코미디언은 아내가 출타하는데 어디 가느냐? 물었다가 아내에게 맞은 사례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부부지간일지라도 개인적 고독과 조용한 시간을 보장할 개인적 공간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막내딸 아이와 집사람 셋이서 베트남 다낭을 여행했는데 유심히 살펴보니 가장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자매들끼리 여행 온 팀이었고 다음은 남녀 친구들끼리 여행 온 경우였다. 부부지간인 듯 보이는 두 사람은 무료하게까지 보였다. 딸아이가 없었다면 우리 부부도 즐거움이 반감되었을지 모르겠다.

요즘 일본인 스기야마 유미꼬 가쓴 『졸혼(卒婚) 시대』라는 책이 화제다. 문학평론가 고미숙은 해혼(解婚)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부부가 끝가지 손잡고 일치된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요 이상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한 사람이 세상을 뜨면 며칠 새 배우자가 따라 세상을 하직했다는 이야기가 아름답게 들린 적도 있었다. 일치는 남들이 보는 것처럼 항시 좋은 것일까. 매일 출근을 하던 남편이 퇴직을 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다면 부인은 행복할까. 가정의 안정과 자식들을 기르느라 앞만 보고 걸었던 삶에서 문득 멈추어서 고운 저녁놀을 보니 무언가 아쉽고 미지의 세계를 꿈꾸어보고 싶은 것이다. 어릴 적 운동회처럼 한 발씩을 반대로 묶고 달리지 않는 이상 서로 보는 방향과 풍광이, 생각의 영역이, 보폭과 체력이, 품고 키운 가치관이 어느새 거리가 생겼다는 뜻이다. 특히 아내의 경우를 보자. 여자의 일생은 7의 승수로 변화한다 한다. 7에 2를 곱해 14세가 되면 초경이 시작되고, 7을 곱해 49세가 되면 폐경기를 맞고, 요즘은 12를 곱해 84세가 되면 평균연령에 도달한다. 우연히 계산해보니 14세와 49세 차이가 35년이고 49세와 84세 사이 역시 35년이다. 오직 자식에 쏟았던 열정이 이제 방황하며 자기를 찾는 미로를 헤매고 남편 중심 사회에 답답함과 불만을 조금 더 느끼는 세월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결혼으로 맺었으니 이제 해혼으로 매듭을 풀자는 주장이다. 이혼을 하지 않고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작은 일에 눈 감을 수 있는 여유를 키우고 서로 필요 이상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고 좋아하는 삶에 독립성을 존중해 주자는 의미라 한다.

쉬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다른 사람의 색다른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조금은 위로받는 여유가 생기고 “노년이라는 기적의 블랭크(blank;빈 공간)”를 각자 다른 취향으로 꾸며 보는 즐거움이 생긴다는 해석이다. 스페인 어느 마을 노인들은 무료를 달래고 적은 용돈을 마련하가 위해 천으로 인형을 만들어 판다 한다. 특이한 점은 얼굴은 눈 코 입 없이 비워둔다는 점이다. 나이 들며 주름과 건 버섯 투성인 얼굴을 서로 자세히 보아야 흠결만보이고 기쁠 것이 없다는 이유란다.

세상을 살다 생기는 짜증을 스스로가 노력해 기쁨으로 바꾸고 폭을 잘 쳐야지 상대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나는 이번 설에 들린 사위에게 이런 말을 했다. “딸아이가 살아갈수록 진심으로 자네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는 것 같은데 그 비결이 먼가? 같은 남자 입장에서 한 수 배워 보세나.” 사위와 딸아이의 웃는 모습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며늘아기에게는 “저렇게 용감하고 잘생긴 두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냐! 밖에서 좋은 말 듣는 사람이 가정에서는 미흡함이 더러 있다는데 긴장하고 살만 하냐.” 그래도 웃는 며늘아기가 참 고마웠다. 나는 커나가는 손자여석들 밝은 표정을 보고 아들딸 두부부의 사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 이 고마운 발전에 50%는 아내의 노력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감사하는 것이다. “노년에 가장 큰 행운은 계획을 세워 바쁘고 유용하게 살면서 권태와 쇠퇴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라는 프랑스의 지성 시몬 보부아르 말을 좋아해 좌충우돌하는 나를 아내가 조금은 더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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