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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과 여섯 형제의 아름답고 행복한 동행위기 아동(남아) 보호시설‘ 도담 그룹홈’
김보라 기자  |  bora1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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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1  19: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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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옛말로 하면 고아원, TV속에 비춰진 보육원 아동들의 모습은 ‘외롭고, 쓸쓸하고, 뭔가 부족하고, 위태롭고, 위험하거나 억척스럽거나’, 애처로운 시선으로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 태반이다. 이 아이들은 주위에서 정말 많은 애정과 노력을 쏟아도 사회의 ‘낙인’에 힘들어 하며 무기력과 방황, 우울증에 시달리며 때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그룹홈’이다. 그룹홈은 6-7명의 위기 아동을 소규모로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양육하고자 만들어진 국가에서 인증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주위 시선에 자유롭기 위해 명패도 달지 않고, 소속인들은 서로를 삼촌, 조카, 이모 등으로 부르며 가족처럼 생활한다.

우리 지역에는 10년 전부터 여자아이들이 모여 생활하는 시설인 ‘가온’과 3년 전 남자 아이들의 생활공간으로 만들어진 ‘도담’ 그룹홈 각각 1곳이 있다. 도담 그룹홈에는 현재 6명의 초‧중 남자 아이들과 삼촌으로 불리는 노종남 원장이 살고 있다.

34평 아파트에 오순도순 모여사는 이 특별한 가족의 일상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함께 자고, 밥 먹고, 학교 갔다 학원가고, 외식도 하고, 주말에는 여행도 다니는 그냥 평범한 ‘가족’이다. 이 아이들은 각기 다른 집에서 태어났지만, 여느 형제들이 그렇듯, 다툼과 화해 속에서 배려와 양보를 배우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다만, 가정 내에서 방치와 폭행 등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언어나 지적 발달이 늦거나 돌발행동을 하기도 한다. 처음 아이가 그룹홈에 들어오면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을 몰라,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폭력적이거나 가출 등 일탈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3개월 정도, 정말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고나면 아이들은 삶의 변화를 인정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조금이나마 아이가 빠르게 안정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전문기관을 방문, 심리치료도 병행한다.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응원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적극 지원한다. 변변찮은 재정 상황에 6명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대기가 녹록치 않지만, 태권도, 피아노, 드럼과 학습지 등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면 어떻게 해서든 배움의 기회를 제
공하고자 노력한다. 독서를 중요시해 학령별, 분야별 필수 전집도 충분히 구비했다. 컴퓨터 2대와 피아노, 개별 휴대전화도 마련했다.

환경도, 상황도 다른 많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바른 언어 습관, 등교 및 귀가시간 준수 등의 규칙을 정해 엄격히 지킨다. 이를 어기면 용돈이나 게임 시간을 깎고, 반성문을 써야 한다. 가사를 도우면 포상 용돈도 준다. 집안의 대소사는 매주 열리는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긴급한 요청이 생기면 바로 들어주지 않고 다음날 회의를 소집해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한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통해 타인의 말과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가르친다.

한창 크는 초‧중등 남학생들이다보니 먹는 것도 만만치 않다. 피자, 치킨, 코다리 조림 등 원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매번 집에서만 먹을 수 없으니 가족회의를 열어 메뉴를 선정해 매달 두어차례 외식도 한다.

‘개근거지’라는 말이 씁쓸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방학 중에 어디를 다녀왔는지 자랑한다는 얘기에 여행도 곧잘떠난다. 올 겨울방학에는 서울을 다녀왔다. 설 명절 이후 제주도 여행을 가기
로 약속하고 아이들과 동선에 대해 계획도 짰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때론 아이들이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위기 아동이었다는 게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밝은 모습으로 게임도 하고 간식도 나눠먹으며 또래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익힌다. 노종남 도담 그룹홈 원장은 “성이 다르기 때문에 외삼촌으로 불린다”며 “이웃집도 모르기 때문에 다소 오지랖 넓어 조카들을 거둬 키우는 마음씨 좋은 총각쯤으로 생각하신다”고 말했다.

6형제의 외삼촌, 노종남 원장 이야기

올해 49살이 된 총각 노종남 원장은 과거 외국인 근로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에서 오랜 기간 일하다 서울의 큰 보육시설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아이들과의 인연이 시작
됐다. 그러던 중 부모의 학대에 세상을 떠난 ‘신원영’ 사건을 매스컴에서 접했고, 마음 한 켠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집에서 부모에 의해 맞아 죽는 아이들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노종남 원장은 주위에 본인의 생각을 전했고, 지인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줘 ‘그룹홈’을 차리게 됐다.
그룹홈으로 쓸 만 한 집을 구하고, 살림을 채워 넣는데 든 비용은 후원금과 자비로 해결했다.

광양을 선택한 것은, 광양에 남자 아동들의 보육시설이 없었고, 누님이 광양에 살고 있어 살림
을 대신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종남 원장이 도담 그룹홈을 설립하기 전 광양에서 발생한 위기 남성 아동들은 갈 곳이 없어 타지로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그룹홈 설립 1년간은 자비로 운영해야 한다. 내실 있고 투명하게 운영을 해야 지자체에서 그동안의 운영 실태를 조사해 ‘사회복지시설’로 인가를 해준다. 이후에는 매달 일정 금액의
지원금이 나온다.

2018년 4월에 개소해 첫 보육 신청이 들어왔다. 장애 아동이었다. 그러나 '장애 아동은 장애 시설로 보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수용할 수 없었다. 머지않아 첫 식구를 맞았다. 첫 아이는 장애 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학대와 방임에 지적 발달이 지연된 아이였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새 식구를 만나다보니 3년차인 지금 6명까지 아이들이 늘었다. 그 중 한
아이는 현재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노종남 원장은 “아이들과 새로운 가정을 꾸렸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만 18세가 되어서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평생을 바쳐 잘 돌봐주고 싶다”며 “힘들긴 하지만 아이들이 안정되고 발전되는 모습을 보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룹홈이 정착될 수 있도록 자원봉사와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다”며 “위기 아동들이 방치돼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꿈과 미래를 가진 당찬 사회의 구성원으로 우뚝 설수 있도록 혼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사를 책임지는 도우미 선생님들 이야기

총각 혼자 6형제를 키우다보니 음식이며 청소, 빨래 등 미흡한 부분이 발생한다. 이를 도와주는 도우미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도담이 이만큼 안정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2-3개월, 도담에서 근무한 도우미 선생님들의 평균 근속 기간이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도담을 찾았지만, 업무량은 많고, 급여 수준은 일반 시설에 비해 턱없이 낮기 때문에 오래 버티기가 힘들다.

특히나 사춘기, 그것도 상처 입은 남자 아이들을 6명이나 보살핀다는 것은 내 자식이라고 해도 보통일이 아니다. 새로운 아동이 들어오거나 아이들끼리 싸움이라도 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들이 벌어지기도 해 여성 도우미 선생님들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다. 그렇기에 떠나는 선생님들의 심정도 십분 이해한다.

노종남 원장은 “선생님들에게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라면서 “열심히 근무하시다 그만
둔다고 하셔도 잡을 수가 없을 때 가장 슬프다”고 말했다.

위기를 넘어 다시 온전한 ‘가족’의 품으로 간 A군 이야기

A군은 유아 때까지만 해도 사업가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슬하의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엄마는 집을 나가버렸다. 생계를 위해 전국을 떠돌며 일을 해야 했던 아버지는 매일 새벽 3-4시에 들어왔고, 엄마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이는 방치됐다. 학교의 상담 선생님이 아이를 깨워 등교하기가 일쑤, 결석은 반복됐다. A군을 보육해줄 곳은 ‘도담 그룹홈’ 뿐이었다.

A군은 적응이 빨랐다. 책을 좋아해 학교에서 다독상을 받을 정도로 엄청 똑똑한 아이였다. 조금만 환경을 바꿔주면 정말 훌륭한 인재로 자랄 수 있는, 공부를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가
능성 있는 아이였다. 노종남 원장은 A군의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해 아이의 일상을 전했고,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안해진 아버지는 술을 끊고 일상에 충실할 것을 약속했다.

수소문 끝에 엄마와도 연락이 닿아 A군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엄마 역시 아버지의 변한 모습에 상처입은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금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경제적 이유로 해체됐던 가정이, 조그마한 도움과 잠깐의 시간을 갖고 나니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A군은 “삼촌의 도움으로 부모님과 다시 함께 살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삼촌과 계속 연락하며 열심히 공부해 삼촌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기견을 사랑한 B군의 이야기

B군은 도담에 처음 왔을 때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선천적인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돼, 상처가 깊어 말문을 닫아버린 아이였다. 몇 개월간 언어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B군 입에서 말이 나오는 게 오늘일까, 내일일까 고대하며 비싼 치료비에도 더욱 자주 센터를 방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쏟아지는 비를 쫄딱 맞은 B군은 유기견 두 마리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영문을 따질 새도 없이 B군은 유기견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3시간동안 혼자서 한시도 쉬질 않고 중얼거렸다.

“너도 엄마가 버렸냐? 나도 엄마가 버렸는데, 빗 속에 외롭고 춥고 힘들었지, 내가 보살펴 줄게, 이제부터 내가 니 형아야.”

6형제만 키우기에도 버거운 형편에, 유기견 두 마리까지 챙기는 건 쉽지 않았지만, B군 마음의 문을 열어준 고마운 유기견들을 내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같이 생활했지만, 유기견들도 상처가 깊어 살림을 물어뜯고, 대소변을 여기저기에 누다보니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힘들어 결국 눈물을 머금고 돌려보냈다.

그 이후 다시 B군은 우울증세를 보였다. 노 원장은 가족회의를 열어 “키우는 것은 어렵지만 너희들이 각자 유기견을 돌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임시보호를 해보자”고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임시보호를 맡은 유기견들과 정이 들어 결국 한 식구가 됐다.

유기견들은 어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았던 B군을 비롯한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정서적 안정을 부여해준다. 아이들은 혼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자신들의 감정을 유기견에게 호소하고, 외로움에 눈물이 날 때면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 강아지들도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아이들이 들어오면 쏜살같이 나가 살을 부비고 장난을 걸며 서로의 정을 나눈다.

명절 선물보다 못한 C군 이야기

도담은 원래의 가정과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아무리 옆에서 잘해줘도 아이들은 본인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종남 원장은 매달 1번 날짜를 정해 원래의 가정에 아이들을 보낸다. 원 가정에 보낸 후에도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상황을 관찰한다.

어느 명절 때였다. 부모가 없는 한 아이를 빼곤 부모님을 만날 생각에 들떴었다. (부모가 없는 한명의 아이는 ‘삼촌 찬스’라는 이름 하에 삼촌을 오롯이 독점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아이들 모두 짐을 싸고 있는데, 전화 통화를 하던 노원장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C군의 엄마가 ‘아이를 보기 싫다’며 집에 보내지 말라고 했던 것. 그 말을 들은 동시에 C군의 얼굴이 보였다. C군은 자신을 그토록 때리고 구박했던 부모였지만,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노 원장은 C군의 엄마에게 “아이가 이토록 행복해 한다, 한우세트와 생활용품 선물 세트를 보낼테니 좀 받아달라”고 오히려 간곡히 호소했고, 그제서야 C군의 엄마는 “그럼 오라고 하세요”라고 답했다.

노 원장은 “자기 자식보다 한우세트가 중요한 사람이기에, 참 마음 같아서는 안 보내고 싶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나도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안도감이 주는 엄청난 힘이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무사히 하룻밤을 지내다 온 C군을 더욱 힘차게 끌어안아줬다.

#취재 후

광양, 재정이 충분해 사회복지제도가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고, 포스코를 중심으로 자원봉사시스템도 잘 갖춰진 곳.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광양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찾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 지역 맘카페에서도 “아이 책과 장난감을 좀 기부하고 싶은데 광양에 시설이 있나요?“라고 묻는 글이 올라오자 ”광양에는 없으니 인근 도시의 시설을 추천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광양에서 10년을 넘게 산 필자도, 광양에서 나고 자란 50대 대표도, 우리 지역에 위기아동들이 생활하는 보육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보육시설에 거주하는 아이들’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보통 가족처럼 티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더욱 감사함이 느껴졌다.

8주년 창간 특집호에 ‘좋은 일을 하시는 특별한 분을 싣고 싶다’는 생각에 수소문하던 중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학원도 보내주고 진심으로 대하며 사회복지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정말 가족처럼 대해주는 ‘총각’이 있다”는 소개를 받았다. 이때 만해도 동네마다 존재하는 아동돌봄시설처럼, 하교 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봐주는 정도지, 이곳이 예전의 보육원 역할을 대신하는 곳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은 할 일을 했을 뿐,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한사코 취재를 마다하는 원장님을 설득해 취재 일정을 잡고 도담 그룹홈을 방문했다. 어느 아파트에 도착하자 후덕하고 온화한 인상의 중년 남성과 발랄한 개 두 마리, 앞치마를 둘러맨 여자 선생님 한분, 그리고 왔다갔다 쉴 새 없이 중년 남성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인터뷰를 이어가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했고, 중간중간 들려오는 아이들의 해맑은 질문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대문을 나서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지역 공동체를 위한 한 구성원으로서, 의제를 제시하고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언론인으로서, 내가 이 멋진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 머리와 마음이 무거웠다.

먼저 언론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도담 그룹홈’을 지역 사회에 알려,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후원을 홍보하는 일이었다.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 가족을 위해 나부터 후원자가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정기 후원을 다짐했다. 또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 아이들을 밖에서 만났을 때, 혹은 내 아이들이 이 아이들과 마주쳤을 때, 편견이나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받아드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많은 지역민들이 이 소중한 가족이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지켜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후원 계좌를 안내한다. 그룹홈은 광양시에 등록된 사회복지시설로, 모든 재정과 후원금은 감사를 통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연말정산시 소득공제가 가능하다.

※후원계좌※ 농협 301-0230-4500-51 도담그룹홈

ps. ‘시설병’과 ‘낙인’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룹홈의 위치와 구성원들의 사진은 공개하지 않기로 편집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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