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초 손백기·광영중 박태훈·광양여고 권영민 감독

▲ 왼쪽부터 순서대로 중앙초 손백기·광영중 박태훈·광양여고 권영민 감독

심단비와 유영실, 백은미, 곽로영 등 광양여자축구가 배출한 수많은 선수들이 국내외에서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초가 한국초등여자축구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았고 현재 광양여고에 재학 중인 이진주, 김민서 선수가 국가대표팀에 차출돼 전지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등 어느덧 광양여자축구는 한국여자축구의 소중한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광양여자축구가 전국 최강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중앙초에서 축구에 대한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고 광영중에서 피지컬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뒤 이를 바탕으로 광양여고에 진학할 때쯤 어느 대회에 나가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경쟁력 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초중고를 잇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손백기(중앙초), 박태훈(광영중),
권영민(광양여고) 등 세 감독의 궁합이 더할 나위없이 좋다는 것은 광양여자축구의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밑거름이다. 기본기를 중시하는 축구에 대한 철학이 같다는 에서 선수의 성장에 미치는 상승작용이 남다르다. 초중고교를 거치는 동안 선수들은 마치 한 감독 밑에서 줄곧 가르침을 받는 것처럼 느끼면서 자신의 축구 세계를 튼튼하게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 세 감독은 광양여고가 전국 여자축구 강자로 서서히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2010년
대 중반 함께 감독과 코치로 한솥밥을 먹었다. 손 감독과 함께 박태훈, 권영민 코치가 의기투
합해 광양여고 여자축구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로 끌어올렸고 2015년 여왕기에 정상에 오르며 마침내 창단 25년 만에 ‘우승’을 선물한 당사자들이다.

특히 손 감독과 박 감독은 중고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선후배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니
그 역사가 여간 예사로운 게 아니다. 기억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자 후배 박 감독이 “당시 백기 형님에게 많이 맞았다는 부분은 꼭 넣어 달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손 감독은 또 손사래를 치며 억울함을 얼굴 가득 매달았다.

그리고 이제 세월이 흘러 맏형인 손백기 감독이 중앙초 감독으로, 그리고 둘째 박태훈 감독이
광영중 감독으로, 막내인 권영인 감독이 광양여고 감독으로 각각 사령탑을 맡아 광양여자축구의 미래를 일선에서 진두지휘 중이다.

세 감독 모두 기본기 중시
축구 철학 궁합 잘 맞아
초중고 이어지며 시너지

권 감독은 “사실 두 선배님이 초중학교에서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일이다. 두 분 모두 섣부르게 기량을 키우기보다는 착실한 기본기 위주의 훈련을
중시하는 까닭에 누구보다 기본기 탄탄한 선수들이 끊임없이 배출될 수 있다”며 “선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열매는 결국 제가 따먹는 구조”라며 활짝 웃었다.

그의 말처럼 손백기, 박태훈 두 감독의 축구 철학은 “당장 우승을 위해 화려한 기술 훈련에 앞서 패스 등 축구의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권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삼각편대가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으니 훈련 스타일 역시 거의 같아 선수들은 이질감 없이 훈련 적응이 빠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전국대회 3관왕에 오르며 중앙초를 명실상부한 초등여자축구 절대 강자의 반열에 올린 맏형 손 감독은 “박 감독이나 권 감독의 축구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걱정 없이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다”며 “성적을 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보다 선수로서의 아이들의 앞날을 먼저 걱정하는 후배의 마음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새로운 감독 밑에서도 적응 기간이 따로 필요하지 않고 곧바로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흔히들 광양여자축구의 강점으로 최고의 조직력을 꼽는데 어린 시절부터 패스 등 기본기를 중심으로 손발을 맞춰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같은 장단을 두드렸다.

지난해 성적을 놓고는 아무래도 손 감독이 가장 우쭐할만하다. 다섯 개의 전국대회 가운데 여
왕기와 추계대회 특히 창단 후 전국소년체전 우승까지 일궈내는 등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권 감독이 이끄는 광양여고 역시 지난해 여왕기를 또다시 손에 거머쥐는 등 꾸준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다만 박 감독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가 완연하다. 중앙초나 광양여고와 달리 좀처럼 정상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예선 문턱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던 까닭이다.

▲ 광영중 여자축구부

소통…선수들 장단점 공유
성장 돕고 경기력 향상도

두 감독의 자화자찬을 지켜보며 한동안 침묵을 이어가던 박 감독은 “올해는 좀 다를 것이다. 중앙초의 주축들이 광영중에 입학한다. 그것도 6명이 한꺼번에 들어온다”며 “이들이 팀에 녹아들면 광영중이 정상을 넘볼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빨리 올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성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보다는 올해, 올해보다는 내년이 기대되는 팀이 바로 광영중”이라고 항변했다.

엎치락뒤치락 즐거운 말들이 오가는 사이 가장 편안한 얼굴은 아무래도 권 감독이다. 조금 전 자신이 밝힌 대로 손 감독이나 박 감독이 피땀을 흘려 우수한 선수들을 키워내면 결국 그 열매는 다름 아닌 광양여고가 가져갈 것이라는 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 감독은 “선배님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할수록 저는 평탄대로를
달릴 수 있게 된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며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매달았다.그는 “결국 좋은 선수를 많이 키워내고 아이들이 자신의 축구 인생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자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 같기 때문에 선수들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격려하면서 광양여자축구의 미래에 힘을 합치겠다”고 말했다.

광양여자축구을 위해 이들 세 감독의 바람 역시 한결같았다. 그만큼 함께 고민해온 시간이 많
았던 까닭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엘리트 체육육성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는 것이다. 특히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대안 없는 합숙 금지와 함께 지역을 연고로 하는 여자프로팀의 부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손 감독은 “문제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현실적인 여러 여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일방적인 합숙 폐지에 앞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축구를 위해 집을 떠나 제주 등 원거리에서 우리 지역을 찾아온 선수들이 많은데 이런 아이들의 여건이 고려되지 않았다. 기숙사 마련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합숙 폐지 현실 고려 안 해
실업팀 부재로 성장판 멈춰

박 감독 역시 “합숙에 따른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행정 일방에서 결정한 것 역시 옳다고 할 수 없다. 합숙이 폐지되면서 오히려 하교 후 아이들의 탈선 등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며 “우선 현장을 제대로 살펴보고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학교체육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봐야 한다. 학교 당국뿐 아니라 체육회 등 지역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합숙 폐지 이후 원거리 지역에서 아이를 보내야 하는 가정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일상을 포기하고 광양으로 건너와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부모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역자치단체별 초중고교별 1개 여자축구팀을 육성하고 있는 한국여자축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합숙제도의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풀려고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고교 졸업 이후 초중고시스템을 이어갈 대학팀이나 실업팀이 없다는 점도 안타까움을 공유하는 부분이다. 권 감독은 “사실 한국여자축구는 국제대회 성적 등 한국체육 기여도가 큰 데 반해 남자축구에 비해 지원이 열악하다.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러한 외면 속에 실력을 갖춘 대학이나 실업팀이 없어 우수한 선수들을 다른 지역이나 팀에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매우 아쉽다”고 전했다.

▲ 광양여고 여자축구부

손 감독은 “광양과 전남도가 키운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인 만큼 전남체육회와 지역 연고 기업들이 여자축구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며 “조금은 불씨가 꺼지고 침체기를 겪고 있는 지역 축구 열기를 다시 지피기 위한다는 측면에서도 여자축구가 갖고 있는 매력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초중고교에 이어 대학이나 실업팀이 창단되면 보다 여자축구의 인프라를 모두 갖
춘 것이기 때문에 보다 우수한 선수들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올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는 지역 여자축구를 위한 선순환 구조”라고 힘을 보탰다.

세 감독과 함께 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길어졌다. 수다가 만만찮았던 셈이다. 그런 세 감독은 올해 성적을 묻는 질문에 내숭 역시 만만찮다. 하나 같이 “성적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평소 훈련을 중심으로 대회에 나가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특히 손 감독과 권 감독은 지난해 자주 걸림돌에 걸렸던 박 감독을 향해 “올해 좋은 선수들이
많이 보강됐고 기존 선수들과 함께 조직력을 끌어올린다면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며 덕담을 건넸다. 가진 자의 여유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광양여자축구라는 영역에서 그들은 ‘원팀’이다. 서로를 위하고 자신을 위한 덕담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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