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숙 광양중마노인복지관장

▲ 김연숙 광양중마노인복지관장
한 부부가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어 왔습니다. 주유소 직원은 기름을 넣으면서 차의 앞 유리를 닦아 주었습니다. 기름이 다 들어가자 직원은 그 부부에게 다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유리가 아직 더럽다며 한 번 더 닦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직원은 얼른 알겠다고 대답 하고 다시 앞 유리를 닦으면 혹시 자신이 보지 못한 벌레나 더러운 것이 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며 유리를 한 번 더 닦아 냅니다. 직원은 다시 다 되었다고 공손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남편은 "아직도 더럽군! 당신은 유리 닦는 법도 몰라요? 한 번 더 닦아 주세요!" 라며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손을 내밀어 남편의 안경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휴지로 렌즈를 깨끗하게 닦아서 남편의 얼굴에 다시 씌워 주었습니다.

남편은 깨끗하게 잘 닦여진 앞 유리창을 볼 수 있었고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얼룩진 안경을 끼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계사년 새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한 해 한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어르신들은 익숙해져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로해지심에 따라 신체적인 건강이 악화되고,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위축되시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시 노인들의 우울이나 자살을 주목하게 됩니다.

현대사회의 자녀들은 핵가족의 증가와 노부모로부터의 경제적 독립, 급속한 사회변화로 인한 의식의 변화 등으로 과거보다 노부모에 대한 존경심, 부양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감이 낮아졌고 노인들은 자녀세대의 이러한 변화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자녀세대의 이런 가치관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노부모-성인자녀의 간의 애정적 결속, 즉 심리적 만족이 여전히 노인의 생활만족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노인의 우울이나 자살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고부관계는 결혼으로 인해 남남이던 사람들이 한 가족 내에서 생활하고 한 남자를 매개로 형성되는 관계이므로 가족 내의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문제요소가 많은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부장제에 의해 가정 내의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과거에 시어머니 입장에서 아들은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고 자신의 심리적 방파제였으므로 며느리를 볼 경우 아들을 빼앗겼다는 느낌을 받아 며느리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가부장적 가치관은 많이 사라지고 가정 내 여성의 지위도 상승하여 전통사회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나 현대사회에도 고부간의 갈등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지난날과는 판이한 상태로 변화되어 과거에는 시어머니의 지위가 높았으나 지금은 며느리의 지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부관계는 본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이제는 고부관계란 노부모와 장성한 자식부부의 관계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습니다.

고부관계로 대표되는 노부모와 장성한 자식들과의 관계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기 위해 양쪽 모두 노력해야 하지만, 자동차의 유리만을 탓하지 않고 내 안경 렌즈를 닦을 수 있는 지혜로운 노인들의 모습,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시는 어르신들의 노력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노인들은 자녀세대와의 관계에 있어서세대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적어도 20년 이상의 연령과 사회적 차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 과거에 수행했던 자녀세대의 역할을 기대하지 말고 사회적 제도, 예를 들어 노인복지관 및 평생교육 프로그램 등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재사회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셋 째,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시부모, 장인 장모,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합니다.

넷 째, 자녀세대가 필요로 하는(손자녀 돌봐주기, 집안일 도움 등) 도움에 관심을 보이고 제공할 수 있다면 제공하도록 노력합니다.

다섯 째, 다른 아들과 며느리, 다른 사위와 딸 등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정운영의 주도권을 아들, 며느리세대에게 넘기고 자녀세대의 자율적인 생활영역을 인정합니다.

이와 같은 어르신들의 성숙한 노력을 통해 노인 갖고 있는 삶의 지혜와 경륜이 건강하고 활기찬 우리 가정과 사회의 든든한 뿌리와 밑받침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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