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정서는 산을 넘는 것이 아니라 산과 강을 따라 문화와 풍습이 형성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너 돌아가기에는 추억에서 너무나 먼 곳으로 와 있는 이들이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면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던 C를 떠 올린다.

몇 년 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C는 말을 하지 않으면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고 여겨질 만큼 우리를 닮은 여인이다. 어려 보이지만 당당한 표정으로 한국말을 공부하고 싶다며 자신의 이름과 주소와 남편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서 전화를 해 보라고 극성을 부렸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은 시작 되었다. 내가 C로 하여 얼마나 마음 아프고 가슴을 졸이면서 지내야 했는지는 모든 한국어 선생님들의 고충도 같을 것이다.

그 후 공부를 하는데 하루는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 서랍장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앞에 놓더니, ‘ 엄마예요. 눈 선생님 쌤쌤. 선생님 엄마 불러 돼요.’한다. 처음 듣는 소리에 예측하지 못한 당황스런 질문에 난 놀라서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입에서는 대책 없이 ‘괜찮아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제 어쩌지, 내 나이에 과년한 타국의 딸이라니…

그렇게 그녀에게도 시간은 흘러 봄이 오고 있었다. 문화체험을 하러 도서관이며, 문화센터를 찾으면, 신이 나서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열심히 한국말로 자신을 설명했다.

요리 공부를 하면 맛있겠다고 저녁에 요리해서 가족들과 먹을 것을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아이를 낳아서 건강하고 야무지게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C다.

이젠 한국말도 제법 잘하고 국적도 취득해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또 예쁜 한국이름을 짓고 싶다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남편과 상의해서 좋은 이름 지으라고 하자 산뜻하게 웃는다.

누구보다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는 착한 아내, 아들딸이 똑똑하게 잘 커서 선생님이 되고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엄마, 운전도 할 줄 알고, 취직도 해서 멋지게 돈도 벌고 싶어 하는 이제는 자국어를 깜빡깜빡 잊어버린다며 농담도 하는 광양 댁이다.

그녀가 언제나 웃으며 멋진 꿈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작은 희망이 되어 줄 것이다. 작은 나무가 되어 함께 자라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 나눌 수 있는 여유와 배려를 아는 당당한 광양시민, 국민이 되길 늘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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