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 이례적 공개

“죽음의 외주화 문제, 더 이상 미뤄선 안 되는 시급사안”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수백여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고용노동부에 위험한 외주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강력 권고했다.

특히 인권위는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중장기 검토하겠다”는 회신에 대해 권고를 불수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하고 인권위 상임위 결정내용 전문을 이례적으로 지난 11일 공개했다. 사실상 사내하청노동자의 권익보호에 미온적인 노동부를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풀이된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간접고용노동자의 생명·안전과 기본적인 노동인권 증진을 위해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노동자 노동3권 보장 등을 노동부에게 권고했다. 이번에 공개된 권고안을 살펴보면 도급이 금지되는 유해 및 위험작업 범위를 확대하고 직접고용 원칙에 따라 외주화가 제한되는 생명안전업무의 기준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또 원하청 통합관리제도 적용범위 확대 등을 통해 외주화 유발요인을 최소화하고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산업재해 예방기능 강화하는 한편 원청의 실질적 지휘명령 시 불법파견으로 인정하는 사항을 파견과 도급 구분기준을 반영하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현생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을 상위법령으로 규정할 것을 요청했다.

또 합리적 이유 없는 사건처리 지연이나 행정 부작위 등 문제점을 개선하고 신속한 근로감독 및 수사가 가능하도록 개선을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는 한편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조건 관해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원청의 단체교섭의무를 명시하는 등 관련 규정을 개정해 줄 것을 당부했다.

더 나가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해 하청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상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등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책임 확대방안을 마련할 것 역시 주문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이 같은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사항마다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사실상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치 않겠다는 뜻을 완곡하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는 낸 자료를 통해 “간접고용은 기업이 필요한 노동력을 사용해 그 이익을 취하면서도 고용에서 비롯되는 노동법상 규제는 회피할 수 있어 비용은 절감하고 고용조정도 쉽게 할 수 있으나 노동자는 노동법에 의한 기본적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심각한 노동문제를 야기해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매일 매 순간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뤄선 안 되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라며 “그간 중대재해 발생에도 불구하고 원청을 경미하게 처벌해 온 관행은 법의 실효성과 기업의 재해 예방 효과를 약화시켰다”고 꼬집었다.

더 나가 “산업재해는 정부와 기업이 보다 더 엄격한 관리감독과 가능한 모든 최대한의 조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으므로 고용노동부는 향후 법 위반으로 인한 재해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 법적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한 일부 사업장의 경우 노사분쟁이 개선된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정부의 역할에 따라 노동현장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인권위는 위장도급(불법파견)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가 원청과의 단체교섭 보장을 통해 자신의 근로조건을 사내하청노동자 스스로 개선해 나아갈 수 있도록 원청의 단체교섭의무를 명시하거나 사용자 개념을 확대할 것과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확대할 것을 권고한 것 역시 고용노동부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회신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노동부가 인권위 권고 중 일부를 수용해 향후 정책결정 및 집행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은 바람직하다 할 것이나 간접고용노동자의 생명․안전과 기본적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인권위 권고사항은 중장기 과제로 미뤄두기엔 그 사안이 중요하고 시급하다”며 “인권위 권고의 이행을 재차 촉구하고자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5조 제5항에 따라 관련 내용을 공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편 인권위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 경제수준에 비해 산재사고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산재 사망노동자 중 하청노동자 비율이 약 40%에 이르는 상황. 특히 건설․조선 업종에선 하청노동자의 산재사망 비율은 약 90%로 매우 높다.

김용균 사망사고를 계기로 29년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 및 시행된 상태지만 원청의 책임이 강화되긴 했어도 떨어짐․끼임 등 유사사고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위험의 외주화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는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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