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농사를 지으며, 책을 읽으며, 산에 오르며, 내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확인이 되면서 가슴에 소용돌이가 일 때가 있다.


나는 논밭가에 피어있는 풀꽃을 보며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고 그 누구의 평가에도 얽매이 지 않는 세상에 오직 하나인 나만으로 ‘자기 존재의 철저한 완성’을 이룰 수는 없을까 소망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현대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개인의 발견에 있다.”라는 글을 읽었고, 오스카상의 신화를 이룩한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항상 가슴속에 새겼던 말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즐거움을 확인해 보았다.


유일신을 앞세운 서양인들은 평등과 공존을 지 향하는 민주주의보다 시장 제일주의를 주장하고 개인적 역량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세 계를 우열과 차별로 심화시키고 있다.


플라톤은 자급자족의 시대에서 가내 수공업 시 대로의 변화를 보며 능력의 차와 여유분의 축적 에 따른 차별의 시대를 우려하였다.


인간사에 어찌 차이가 없을 수 있겠는가. 능력 있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고 많 이 가진 사람은 부족한 사람과 조금 나누어야 할 필요성을 예견한 것이다.


진정으로 한 사람 한사람의 존재와 개성이 인정되고 다름이 차이가 아닌 구색과 조화로 인식 될 수는 없을까.


인도에서 청소부는 카스트 계급제도인 사제, 귀족, 서민, 노예 등 네 계급 어디에도 속하지 못 하는 가장 낮은 불가촉천민이 자손 대대로 이어가며 종사하는 가장 천한 직업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은 청소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청소부를 ‘마하타르’라고 부른다.


마하트 마 간디에서 보여주듯 산스크리트어의 마하트(mahat)는 ‘위대한 사람’을 뜻하며 마하타 르는 마하트의 최고 높임말이라 한다. 남들이 하기 꺼리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무시되고 갑질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


인도 사람들이 비록 불가촉천민이지만 청소부를 아껴주고 경제적으로도 대접해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에서는 일손이 부족한데 미취업 청년들이 늘어나는 기현상이나 출산율이 OECD 국가 중 제일 낮은 요인도 소중한 내 자식이 잘못되어 앞줄에 서지 못하고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은 아닐까?


8,9월 지리산 종주 길에서 저마다 자리 잡고 피어있는 원추리, 이질 꽃, 구절초, 범꼬리, 동자 꽃 과 이름 모를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어울려 피고, 사이좋게 섞여 피어있는 모습을 잊을 수 가없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때에도 꽃들 마다 다름의 신비함에 넋을 잃은 경험이 있다. 세 계의 석학들은 힘주어 이야기한다.

“세상에 슈퍼 푸드는 없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잡초는 없다.” “모든 생물의 우량종자는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환경에서 탄생된다.” 가난 하면서도 농민들이 웃고 살 수 있는 것은 농사일 에도 잘하고 못하는 사람이 있어도 품삯에 차별 이 없다는 점도 있지 않을까?
왜 사물은 다름을 찬미하면서도 인간끼리의 다름은 시비와 차별의 대상이 될까? 어째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말을 공감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려울까? 심리학자들은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 동정적 마음을 갖는 것보다 성공한 친구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옛말에도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나보다. 가장 안정감을 주는 정삼각형은 아래는 넓으나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마침내 정점을 이룬다. 조직에는 최고경영자도 있고, 중간관리자도 있고, 다수의 종업원도 있어야 한다. 모두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기개발을 통해 성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는 우리가 무소유 의 법정 스님의 말을 유념은 하데 똑같을 수는 없 다. 남에게 자랑할 것은 없어도 크게 부러워할 필요도 없어야 한다.


공자는 40대를 불혹(不惑)이라며 “세상일에 미 혹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나는 70이 넘고 2년이 흘러도 항시 흔들리며 산다. 뼈저리게 후회하고 반성하면서도 이따금 신호 위반, 과속 과태료 통지서를 받고 접촉사고도 낸다. 친구들과 별것 아닌 일로 논쟁을 벌인 뒤 밤 잠을 설치기도 한다.


시집 못 간 막내 딸아이 가슴에다 못을 박을 때도 있고,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몸이 불편한 후 천주교에 더욱 의지하고 사는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긴 높은 자리 탐하지 않고 80평생 구도의 길을 걸어온 수좌 적명 스님도 “이속에 끌리지 않고 색의 아름다움이나 명예의 빛남에 구속되지 않으려 일생을 노력했다” 일기에 써두었단다.

오늘도 흔들리는 이 마음을 그저 웃으며 두 주먹 쥐면서 또 한번 다짐해 본다. 그래도 가슴 펴 고 나는 나답게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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