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도서관 서재환·장귀순 부부 400kg 김치 담아 대구경북 응원

봄이 찾아왔으나 어느 때와는 달리 텃밭은 조용했다. 예년 같으면 흐드러지게 핀 봄꽃과 함께 텃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테지만 진상면 청암골에 자리 잡은 텃밭도서관도 코로나19 사태를 비껴가지는 못한 모양이다.

인기 만점, 아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던 짚라인도, 겨우내 얼었던 몸을 풀고 잉어가 노니는 연못 위를 쉴 새 없이 떠다니는 쪽배도 연못 한 켠을 우두커니 차지한 채 쓸쓸한 봄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도, 굴렁쇠를 떠미는 아이도, 염소와 함께 쓰는 닭장에 모여 먹이를 주는 아이도 보이지 않는 텃밭의 분위기도 마른 바람에 먼지 날리듯 쓸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이들이 없는 텃밭은 텃밭이 아니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는 농부의 마음 한 켠도 찬바람이 불긴 마찬가지긴 할 터이나 마실 나온 마을 사람들까지 북적북적하던 텃밭에 고요가 찾아들었다고 매양 손 놓고 있을 농부가 아니었다.

19일 찾아간 텃밭에 아이들은 없었으나 사람 냄새나는 인정이 맛나게 버무려지고 있다. 텃밭도서관 서재환 장귀순 부부가 지난 12일 깍두기 김치 100kg을 담아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느 곳보다 고통이 심한 대구광역시로 보냈던 게 그만 인기가 좋아 오늘은 300kg으로 대폭 늘려 깍두기를 담기로 한 날이다.

다만 이번에 담은 깍두기 중 100kg은 ‘나눔을 실천하는 광양사람들의 모임’(이하 나광모)를 통해 18곳 광양지역아동센터로 먼저 보내고 대구에는 추가로 200kg을 담아 광양시 사회복지사를 통해 경증환자치료센터나 도움이 꼭 필요한 곳에 보낼 예정이다.

다만 1차로 보낸 100kg을 담을 때와는 달리 300kg으로 양을 대폭 늘려 놓으니 도무지 부부가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평소 왕래가 잦던 나광모 회원 몇에게 도움을 청했다.

때마침 손이 빠른 회원 몇이 손을 보태겠다고 일찌감치 연락이 왔다. 주부경력으로 치면 15년에서 20년 차를 조금 넘겨 안주인 귀순 씨를 따라잡을 수 없을 일이나 손이 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라도 가시내들이 뭉쳤으니 거뜬하겠다 싶다.

19일 아침, 생각보다 이른 아침에 회원들이 집을 찾았다. “어여 오라”는 안주인 귀순 씨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일찍 오겠다던 막내 회원이 막차를 타고 왔을 때는 이미 깍두기 썰기가 한창 진행 중인 뒤였다.

우선 앞에 놓인 무의 양을 보고 기가 찼다. 말로야 300kg이라면 언뜻 짐작하기 어렵겠으나 수백개가 넘는 무의 껍질을 벗기고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다시 썰어서 담고 여기에 굵은 천일염으로 밑간을 하고 다시 양념을 버무려 내는 데까지 보통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장기간 개학이 연기되면서 내내 집안에서 심심해 엄마를 따라나선 아이들까지 손을 보태는 지경이다.

하지만 무 껍질 깎기와 무 씻기, 무 썰기 각각 분야를 나눠 속도를 붙이니 생각보다 일은 수월하다. 좀체 줄지 않을 것 같은 무가 작은 시곗바늘이 정오를 가리키기 전에 깍두기로 변했다.

양념도 하기 전이지만 깍두기로 변한 무는 달았다. 텃밭도서관장 재환 씨가 제주도에서 보내온 무였는데 당도가 일반 무와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다들 재료 칭찬에 합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재환 씨는 “제주에서 보내 준 무 자체가 참 맛이 좋아 김치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전라도 손맛이 보태지니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며 “지난번 보낸 김치를 맛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김치가 너무 맛있다며 칭찬을 아낌없이 보내줘 칭찬에 약한 촌놈이 또 이렇게 일을 벌였다”고 크게 웃었다.

양념을 버무리고 포장까지 끝내자 어느덧 오후께가 저무는 시간이다. 하지만 놀리는 손 없이 언니, 동생하면서 오가는 수다가 힘이 됐는지 모두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은 없는 눈치다. 오랜만에 만나 남편 뒷담화에 빠진 여자 여섯 사이에 재환 씨가 좀 안 돼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나광모 반찬팀을 오래도록 이끌어온 김영주(49)씨는 “모두 코로나19 감염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농부님 고운 마음에 내 마음도 하나쯤 보태게 돼 다행”이라며 “특히 대구와 경북주민들이 어느 곳보다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 빨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힘내시길 바란다. 대구, 경북 힘내라”고 응원했다.

역시 반찬팀장을 했던 장채순(47)씨 역시 “대구경북 정치인들은 솔직히 좀 밉지만(웃음) 대구경북 시도민 모두 힘내서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냈으면 좋겠다”며 “위기 속에 더욱 빛나는 대한민국 모두 힘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나광모 회원들의 응원 외침을 듣고 있던 재환, 귀순 부부의 입이 귀에 환하게 걸렸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다 함께 찍는 기념사진 구호 역시 “코로나19 이겨낼 수 있다. 대한민국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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