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키스를 할 때 눈을 감는 이유는 왜일까? 우리가 느끼는 대표 감각인 시각과 청각, 후각과 미각 그리고 촉각 등 오감은 상황에 따라 뇌의 선택과 집중을 받기 위해 경쟁관계에 있다고 한다.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을 하면서 상황과 목적에 따라 한두 가지 감각이 우선 되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적을 감지하거나 탐색할 때에는 시각과 청각이, 번식을 할 때에는 무엇보다 후각과 촉각이, 음식을 먹을 때에는 느긋한 마음으로 오감 모두가 여유롭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진화하 는 과정을 거치며 시각이 가장 중요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감미로운 키스를 할 때 우리 몸은 ‘제발 시각만 좀 없애 줘요. 집중 좀 하게’ 라고 하며 눈을 감는단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이 안정되고 생각이 깊고 복잡해지며 철학이라는 영역이 생기면서 인간은 감각을 이성의 아래에 두게 되었다. 대인관계의 중요성과 소통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감정은 참고 절제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까지 인식되기에 이른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콩디야크는 “감각에서 인간의 모든 정신능력이 만들어진다”라고 주 장한다.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나이가 들며 단조로운 일상과 노년의 무료를 이기려면 감정을 표현하는데 보다 적극적이고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는 인간이 행복하려면 꼭 가져야 할 감정이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가장 일반적이며 소중한 감정이다. 사랑의 반은 번식에서 진화된 남녀가 나누는 격정이다.

사디즘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사드는 이 아름다운 격정(orgasm;오르가슴)의 극치를 조그만 죽음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도 사랑하는 남녀는 사랑을 나누다 보면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 같다.


나도 한때는 길가의 돌멩이도 차보고 싶고, 울 넘어 뻗은 감나무 가지를 점프해 잡아보고도 싶 고‘ 굴렁쇠를 굴리며 마을을 접수하고, 대책 없는 짝사랑도 해본 시절이 있었다. 이제 학창시절 그 렇게 퍼붓던 원 센놈의 잠도 뒤척이며 애원을 하며 청하고 그 맛있던 무밥 송키 밥이 쌀밥으로 바뀌어도 수저가 밥상 위를 여행을 다니는 요즈음 격정의 이삭줍기가 가능할까.

내 몫 만큼, 내 능력 만큼, 아직도 가슴을 데우고 싶은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까지는 아니라도 격정은 아니라도, 가슴은 콩닥콩닥 뛰어보고 싶은 것이다. 기껏해야 몇 가지 찾아 실천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은 초라하다 할 지 모르나 나에게는 그래도 가슴이 따뜻해질 때가 많다.

헐떡이며 뒷산을 오르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 갑습니다”하며 진심 어린 축복의 인사를 나누고 코 재를 오른 다음에는 산들바람에 땀을 실어 보낸다. 멀리 초남 앞바다 위 뭉게구름에서 어릴 적 동화책과 만나기도 한다.

춥다는 날 두 시간 등산 후 뜨거운 물로 싸워하며 느끼는 쾌감은 그중에 백미(白眉)이며 나만이 즐기는 카드이다.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건강하게 복 받고 사십시오”라는 말을 즐겨 쓴다. 상대방이 “감사합니다. 그 이상 소중한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화답할 때에는 내 가슴은 또 콩닥콩닥 뛴다.


나는 아직까지도 종교가 존재의 의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고 싶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는 말은 철학적이거나 도덕적이기 전에 가장 실존적인 말이다.

종교 지도자보다 척박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세상에서 순박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죄인임을 자처하며 유일하게 받는 축복은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교회를 어떤 목적이나 이유 없이 존재 자체와 주어진 삶에 감사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교회는 존속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감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죽을 때 “내 생애에서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 고백했다 한다. 그러나 눈이 멀어 볼 수 없었고 귀가 멀어 들을 수 없었던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차이는 무엇 때 문일까? 20세기 최고의 수필이라 찬사 받는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라는 글에서 이유를 찾아보자. “첫날은 나를 가르쳐 준 고마운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아름다운 꽃들과 풀과 빛나는 저녁노을을 보겠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먼동이 타오르는 모습과 저녁에는 영롱하 게 빛나는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 집 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는 사랑하는 마음과 손바닥의 앞뒤 면과 같다. 행복은 일상을 사랑으로 보고 범사에 감사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시시콜콜한 일상 속에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데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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