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예전엔 먹을 것이 없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먹을 것이 흔해서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합니다. 예전엔 옷이 없어서 무엇을 입을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유행을 따라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물론 아직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요즘 살기가 팍팍해진 면도 없진 않지만) 그런 염려에서는 많이 자유로워 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등 따습고 배부른 세상이 되어서 좋다 했는데 자꾸만 여기저기에서 바람이 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지난 일요일 오전엔 눈도 잘 오지 않던 광양에 눈발이 흩날리기도 했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비켜 가야 할 겨울이 못내 아쉬운지 매년 거르지 않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추운 겨울이 있어야 봄이 간절하고, 또한 피는 꽃이며 봄 식물들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겨울은 생명들에게 비록 움츠러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담금질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추위를 견딘 후에 핀 봄 꽃이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춥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난방비며 이러저러한 이유로 춥지 않은 겨울이 당장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봄이 되고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추운 겨울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되지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고,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라는 교훈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지금 젊은이들에겐 이이야기가 고리타분한 어른들의 넋두리로 들리나 봅니다.

차 한 잔 값이 밥 한끼 정도씩이나 하는 비싼 별다방 커피나 이름도 요상한 음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세련되고 폼나 보이고 뭔가 여유를 누릴 줄 안다고 하기보다는, 이 배부른세대가 배고픔을 통해 얻는 교훈을 알지못하고 앞으로 험난한 세상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부터 생기는 것은 기우일까요?

추운 겨울 없이,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안하고, 배부르게 살아가는 이들은 결코 배고픔과 혹독한 고난을 통해서 배워 익혀야 할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 속에 이 담금질은 결코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처음엔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니 그런 겨울같은 담금질이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회생활 가운데 약이 됩니다.
고마운 줄도 알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함께 살아가는 법도 알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함을 자연스레 몸에 배이게합니다.

지금 배부르게 자라가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담금질 되어가야 할지, 그리고 그런 담금질 없이 자란 세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 교훈들을 새기게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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