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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로 대본영 건설과 강제 징용된 조선인 희생자 존재의 말살-나가노 여행 속 역사의 발자취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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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6  19: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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ねえ、日本の人たちよ / 여보소, 일본인들이여
국문 번역 : 김보예

一九四四年秋
村役人と警官に 引っ立てられ
トラックに詰め込まれて 釜山
富山からは 貨物列車で
ここ松代
外から錠が掛けられて
用は 車内のバケツ

1944년, 가을
마을 이장과 경관에게 잡혀 와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온 부산.
도야마에서는 화물열차로
여기는 마쓰시로.
닫힌 문엔 자물쇠가 채워지고
볼 일은 차 안 양동이에

翌年 四月
避難豪まで あと一歩…
ダン!ダ、ダーンの轟音の途端
岩は 私の頭を割り
親方の 腰を砕き
無数の小石は
若い仲間の体中を突き刺した

다음 해, 4월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피난 벙커 완공.
펑! 펑, 퍼엉, 굉음이 울리자
돌덩이가 내 머리를 가르고
작업반장의 허리를 두드리더니,
무수한 돌파편이
젊디 젊은 내 동료의 온몸에 박히네.

東京大空襲 米軍沖縄上陸
大本営工事の噂
パルリ!パルリ!の突貫工事で
近くの焼き場は どこも満杯

도쿄대공습과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
대본영 공사에 대한 소문
빨리! 빨리! 강행되는 공사
주위 소각장은 어디에서나 연기가

私らは犀川べりの やぶの中
仮説炉で 一日かかって
炭と化した

내 동료들은 사이가와강 변두리 덤불 숲속
임시 소각장에서 하루를 꼬박 지새워
재가 되었지.

光復(クァンポク)後
仲間の一人に 抱えられ
懐かしいの故郷に
私は帰れたが

광복 후,
한 동료의 품에 떠안겨
그리운 고향에
돌아왔건만,

変わり果てた 私の形に
妻は倒れ
一年間 人間に戻らなかった

초라하게 변해 버린 내 모습에
아내는 정신을 잃고,
사람답게 생활하기까지 1년이나 걸렸소.

親しくてくれた
人達もいたけれど
私らの運命は
なぜ、こうなったの
なぜさ? 考えておくれ
ねえ 日本の人たちよ

다정하게 대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와 동료들의 운명은
왜 이렇게 된 건가.
왜인가? 생각해 봐주시게.
여보소. 일본인들이여.


제 2연. 다음 해 4월

1944년 11월에 시작한 공사는, 1945년이 4월이 되자 80% 이상 완성되었으며, 부분적으로는 내부 설비까지 갖추어졌다. 높이 3m, 폭 4m, 총합 길이 10.1km(죠잔 6km, 마이쓰루야마 2.5km, 미나카미야마 1.6km)에 달하는 대규모의 지하호였다. 최소암(崔小岩) 씨의 증언에 의하면 1944년 10월 당시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가 약 7~8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노동 현장의 환경은 작업반장의 성품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공사는 크게 2개의 니시마쓰조(西松組)와 가지마조(鹿島組)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두 개의 조 아래는 수없이 많은 작업반이 존재했다. 각 작업반의 반장은 조선인이었다. 반장들은 매일 달성한 작업량을 조장들에게 보고하였다. 조장은 상대평가로 각 반을 평가하였고, 달성 작업량이 따라 배식과 급료에 차이를 두었다. 그 때문에 작업반장들은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했다. 노동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작업반장이 누구냐에 따라 고향 집에 돈을 부치는 일, 병원에 다녀오는 일 등등 대우에 다소 차이를 보였다.

니시마쓰조(西松組)의 조장들 중에는 악랄 높은 이가 있었다. 최소암 씨의 증언에 의하면, 암석을 뚫을 때마다을 위에서 돌들이 온몸에 떨어졌다고 한다. 작업 후, 허리의 통증 계속되었고, 결국 허리를 펼 수 없게 되었다. 조장은 소리쳤다.

“이 자식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못 서는 거냐? 한번 서 봐라. 서서 못 가면 기어서라도 가!(お前何やってるんだ、立っていけないのか、ちょっと立ってみろ、立って行けなかったら、這いて行け!)”

최소암씨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기어가자, 그는 뭉둥이를 휘두르며 다시 소리쳤다.
“이 자세는 또 뭐야!(その格好は何だ!)”

발파 작업은 밤낮없이 이루어졌으며, 급기야 암탉이 알을 낳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업은 2교대 및 3교대로 이루어졌다. 1991년 3월 17일, 최소암씨는 마지막 눈을 감기 전까지 가혹했던 작업 현장을 생생히 기억하였다. 그는 불발한 발파와 접촉해 몸이 날아간 동료 4명을 떠올리며 처절한 나날을 회상하였다.

“갱내에서 산산이 흩어진 동료의 유해를 열심히 모았으나, 도저히 머리 하나는 찾지 못했지. 그 후 천장 위에 물이 떨어져 위를 올려다보니, 사람 머리가 천장 판자 사이에 끼어 있었어”

실제로 대본영 지하호 내에 보면 조선인 노동자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죽은 동료의 얼굴, 그리운 고향 마을 이름, 한글로 추정되는 글귀 등…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아픔이 서려있는 역사의 흔적이다.

▲ 비공개 부분에 지하도 남겨진 조선인 노동자의 흔

▲ 일반인 공개를 위해 안전 장치를 설치한 지하도, (우) 당시의 작업 현장을 느낄 수 있는 비공개 부분 지하도

제 3연. 도쿄대공습과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
제 4연. 내 동료들은 사이가와강 변두리 덤불 숲속

배식은 수수 70%, 쌀 30%였다. 작업 기계는 약 9kg이나 나갔으며,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들어서 사용해야 했다. 나이 든 이들은 버티지 못하였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도 늘어났다. 가혹한 노동과 열악한 처우에 도주하는 노동자도 생겨났다. 도주에 실패한 이들은 총살당했다.

어느 날 가지마조(鹿島組)에서 130명쯤 되는 노동자들이 형편없는 배식을 언급하며 대우 개선 운동을 일으켰다. 그러자 운동 주도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으며, 운동에 동참한 노동자가 속한 반의 반장은 사살당하였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 공사의 희생자 수는 베일에 싸여있다. 또한, 노동자들의 유해가 매장된 장소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최소암 씨의 증언에 따르면 희생자가 많은 날은 하루에 5, 6명씩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반에서 누가 죽었는지, 누가 무슨 작업을 하다가 다쳤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상사의 귀에 들어가면, 사무실로 끌려가 몰매를 맞았다. 만약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다니면, 다시 사무실로 불려가는데 그 후로 돌아온 이는 없었다고 한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의 작업은 극비로 진행되었다. 존재를 말살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이었다.

제 5연. 광복 후,
제 6연. 초라하게 변해 버린 내 모습에
제 7연. 다정하게 대해주는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強制動員問題解決と過去清算のための共同行動), 나고야 미쓰비시·조선 여자 노동 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협회(名古屋三菱·朝鮮女子勤労挺身隊訴訟を支援する会), 일본 제철 구징용공 제판을 지원하는 협회(日本製鉄元徴用工裁判を支援する会)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구제 재단·기금 설립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시(詩)의 마지막 구절에 답변하고자 노력 중이다. 미쓰시로 대본영 지하호 앞에 세워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평화 기념비’에는 「강제 連行(연행)되어 가혹한 勞動(노동)을 강요당하여 희생된 수많은 조선인을 추도하고 과거의 전쟁 침략 가해를 깊이 반성하며 우호친선과 항구평화를 기원」하는 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도쿄 올림픽인 2021년 7월 23일로 연기되었다. 내년에는 전 세계 많은 이들이 도쿄를 찾을 것이다.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일본만 찾지 말고 역사의 흔적에도 발걸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도쿄 올림픽의 뜨거운 열기가, 도쿄 근교에 잠든 우리 역사의 아픔까지 따뜻하게 끌어안아 주길 바란다.

▲ 조선인 희생자추도평화 기념비문
▲ 조선인 희생자추도평화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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