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산하는 때로 풍광보다 아름답고 계절의 변화보 다 야속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때가 있다. 우리가 아끼는 백운산에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록 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서만 간직되고 있는 잊혀져가는 우리형제와 이웃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멀리는 농민 동학군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대의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웃음으로 애써 공포 를 잊으며 넘었던 산. 처자식 먹여 살리려 소금과 김을 짊어지고 흘러가는 계곡물을 반찬 삼아 꽁 보리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한재를 넘나들 던 그 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이념이 무엇인 지도 모르면서 차별 없는 세상이 온다기에, 그저 자식들에게는 배고픈 서러움 남겨주지 않기 위해 시키는 대로 죽창과 총을 들었는데 적이 되어 싸 우다 보니 악이 바치고 원망이 쌓이며 소중한 이 웃과 동포끼리 철천지원수가 되었던 반란군 토벌 전투의 숨겨진 이야기. 이유도 모른 채 고통보다 더 큰 한과 설음으로 야위고 고된 육신을 짜내며 곱다는 백운산 단풍보다 더 붉은 선혈을 토해냈 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굳어진 육신은 산자락 너덜 강 바위처럼 켜켜이 쌓여만 간 슬픈 이야기 가. 죽은 사람보다 가슴에 묻은 사람들의 고통이 더 컷 던 사연들이 있었다.

허기를 면하려 돌감나무 위 홍시를 따려 오르 던 토벌군은 매복한 공비의 저격을 받고 떨어져 숨을 거둘 때, 굳어진 동공은 푸른 하늘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찾았을까? 신발을 마주치며 응 원하는 여자 공비를 잡겠다며 은폐장소를 뛰쳐나 간 젊은 혈기는 미리 은신해있던 반란군의 총알 받이가 되어 배고픔과 고단함을 비로소 잊었다. 퇴비 더미 속에 숨어있다 찔러대는 죽창이 허벅 지에 박혀도 고통과 비명을 참았기에 목숨을 부 지할 수도 있었다 한다. 큰 자식이 좌익을 따라 산에 숨어들었고, 뒤이어 동생들이 마을에서 자 취를 감추자 일생동안 남에게 궂은소리 한번 안 해본 아버지는 자식 잘못 둔 죄로 경찰서를 들락 이다 변을 옷에 쏟는다는 소문이 돈지 얼마 뒤 백 운산 자락에 묻혔다.

사라실 마을 집안 형수님은 애지중지 살림 밑 천으로 키운 소를 반란군이 몰고 가자 죽음을 무 릅쓰고 느랭이 몰랑까지 따라가며 돌려 달라 애 원했다 한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당신이 우리들 얼굴을 보았으니 증언을 하거나 고변을 하면 우리나 우리 가족이 죽소. 제발 죽임 을 당하기 전에 돌아가시오.” 처절한 이념다툼 속 에서도 사람 사는 정은 있었나 보다. 형님이 소식 을 전달받고 죽을힘을 다해 형수를 따라잡을 때 까지 다행히 죽지는 안 했다 한다. 때로 운명은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로 남겨지기도 한다. 옥룡 면 밤실 마을은 하룻밤에 일곱 마리 소들이 끌려 가는 경우도 있었고 많은 마을에서 이런 일은 비 일비재했다.

작은 야산 하나를 사이에 둔 지척인 두 마을 사 이에도 한마을은 산에 들어간 사람이 다른 사람 을 데리고 들어가 많은 사람이 반란군에 가담해 소개(疏開)를 위해 마을 전체가 불살라지기도 했 고, 다른 인근 마을은 그런 사람이 없어 무사한 경우도 있었다 한다. 광양 읍 우산 리 4구인 중 정 마을은 마을 앞으로 긴 개천이 흘러가는데 백 운산으로 향하던 군인들이 개천을 따라 길게 앉 아 식사를 해먹었다 한다. 부식 지원이 여의치 않 아 근처 호박을 보이는 족족 싹쓸이해 사람들은 이 부대를 호박 부대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면부 의 산중마을들은 낮엔 군인이나 경찰로, 밤엔 반 란군으로 주둔이 바뀌면서 갓난아이를 업고 밥을 하는 어머니들은 아이가 울면 조용히 달래지 않 으면 아이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가슴을 조이기가 예사였다.

반란군들은 동조자를 통해 군이나 경찰, 면서 기 등의 가족들을 염탐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치안이 안정된 후에도 조사나 고변을 통해 반란 군 가담 여부를 알아낸 후 해당자는 옥룡 면과 봉 강 면 사이 가무개재 등에서 총살이 자행되었고, 사람들 사이에 큰 원한이 없는 사람은 이웃사람 들의 보증을 받고 풀려나기도 하였다. 우리 마을 한 분은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경찰생 활을 오래 하였으나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기 위 해 경상도 쪽을 행하던 중 아껴주던 지인이 지금 가면 살아오지 못한다며 틈을 봐서 도주하라며 도와주어 훗날 군대를 가는 길을 택했다.

올해도 광양만의 봄기운이 백운산 4대 계곡을 타고 오르며 매화, 진달래꽃, 산벗꽃 등 이름 모 르는 꽃들을 피워 올리며 억울하게 간 원혼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아! 원혼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이 참혹한 동족상잔의 저주스러운 전쟁은 우리로 끝내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한 다고. 서운함이 고변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측은 함이 보증을 서게 하여 사람을 살리는 그런 소용 돌이는 더는 없어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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