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김 용 주
우리치과 원장

일이 잘못된 뒤에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
다는 뜻의‘ 후회막급(後悔莫及) ’이란 사자
성어가 있다. 필자는 여러 해 동안 치과 일
을 해오면서 두고두고 잊혀 지지 않는 기억
이 하나 있다. 돌이키기엔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기억이다.
횟수로 4~5년쯤 됐을까? 60대 후반의 왜
소한 체구의 할아버지. 처음 언제, 어떤 이
유로 우리치과에 내원하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간혹 당신의 치아가 불편하
시면 치료를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려워져 하나
둘 치아를 뺄 수밖에 없으셨던 할아버지께
서는 어금니(대구치) 치아 대부분이 발치되
자 이대로는 음식 씹기가 너무 불편하다 하
시면서 부분틀니 제작을 결정 하셨다. 부분
틀니는 대개 어금니(대구치) 치아가 여러
개 빠졌을 때 시술을 하게 된다 .이때는 보
철치료의 방법을 쓰게 되는데, 발치된 잇몸
부위에 한정된 틀니와 부분 틀니를 활용,
남은 치아를 지지 치아로 사용하게 된다.
일단 발치가 진행되면 외관상도 그렇거
니와 계획한 보철 치료가 마무리 되는 2~3
개월 동안은 일상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시 치아와 임시 틀니를 제작해 사용
케 한다. 이때 다소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
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환자 적응 여부
를 봐야 보철 치료의 최종 결과도 예측할
수 있기에 그만큼 치료 과정이 중요하다.
할아버지 또한 치아와 잇몸에 대한 기본
처치 후 임시 치아와 임시틀니를 제작해 사
용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때 허리가
좋지 안아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해야
될 것 같다며 잠시 치료를 중단케 되었다.
그렇게 3~4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
지는 전화를 하셨다. 몸이 아파 현재 거동
하기가 불편해서 치과도 가질 못하고 있는
데 며칠 전 임시치아가 빠져서 씹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 시간이
나면 집에 와서 임시치아를 다시 치아에 고
정해줬으면 하고 부탁 하셨다. 순간 부분틀
니 지지 치아의 임시치아가 빠지면서 임시
틀니 또한 제대로 사용키 어려운 터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겠다 싶어 며칠 뒤 점심시간
을 활용해 방문키로 했다.
그런데 순간 시간이 지나고 방문 약속을
깜박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10여일 후 갑
자기 생각이 난 터에 부랴부랴 다시 전활
걸었는데 이번엔 함께 살고계신 할머님께
서 전활 받으셨다. 할아버지 몸이 다시 안
좋아져서 큰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고, 할
아버지 돌아오시면 연락하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연락이 없는 채로 몇 주 시간이 흐
르고 문득 진료하다 할아버지가 궁금해져
서 다시 집으로 전화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떠세요. 저번 이후
로 치과에 연락이 없어서요.”
“어, 할아버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마
음써줘 고마우이”
뭔가 갑자기 얻어맞은 듯한 멍한 느낌.
뭐라고 위로할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전화를 내려놓고 말았다.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의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빠진 임시치아를 다시 고정하는 거
야 크게 어렵지도 않는 일이었는데... 한편
으로는 큰 병 앞에 당장 씹는 불편함 정도
야 크게 문제 되겠어. 라는 자기변명과자기
회피를 해보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
도 아직껏 기억 속에 잊혀 지지 않는 걸 보
면 그 날의 경험이 내게 있어 결코 작지 않
은 듯하다. 무심코 지나쳐 버린 할아버지와
의 약속, 돌이켜 보면 단순히 임시치아를
붙이고 떼는 정도의 치료과정 중의 하나로
생각했기에 약속을 잊어버렸던 것은 아닐
까? 병환으로 몸져누워 거동도 못하시는
할아버지의 상황을 좀 더 헤아렸더라면 과
연 그 약속을 잊어버렸을까? 할아버지와
내가 정한 그날 약속의 크기가 서로 그리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더욱 미안해
진다.
앞으로도 지나온 시간 이상으로 환자를
치료 하겠지만 그와 같은 후회스런 기억이
다신 내 기억 속에 쌓이는 일은 없어야 한
다고 다짐한다. 앞으로도 잊혀 지지 않을,
아니 잊어서는 안 될 할아버지에 대한 후회
막급의 기억. 어쩌면 그 기억이 지금의 나
를 키워 가는 건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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