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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기자의 詩가 있는 월요일.2부치지 않은 편지 2 <정호승>
최인철  |  hwakae72@gyci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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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04  14: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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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시인 정호승
- 1950년 경남 하동
-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등단

-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외 다수

- 제3회 소월시문학상 외 다수

함박눈이 참, 그러니까 전라도 말로 ‘허벌라게’ 내리던 한겨울 새벽이었다. 96년 1월 6일, 이른바 소집 해제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을게다.

당시 군산에 있던 고등학교 단짝 친구와 익산역 부근에서 진탕 술을 마시고 따스한 그녀의 자취방이 있는 이리여자중학교 골목길을 헤매던 나는 가판대에 놓인 스포츠 신문을 통해 그의 죽음을 알았다. 그의 죽음은 목화솜 같은 함박눈에 천천히 덮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자취방이 멀게만 느껴졌고 벼락을 맞은 듯 취한 정신 한 켠이 명징해지는 중에도 무릎과 발목이 자꾸만 꺾여 몸이 휘청거렸다.

자꾸만 눈길에 미끄러졌다. 그렇게 미끄러지기를 얼마 쯤 했을까. 마침내 그녀의 자취 방문 앞에 도착한 나는 눈에 덮여 하얗게 변한 쇠창살 창문 아래 주저앉아 꾸역꾸역 울었다.

왜 그렇 게 울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1000회를 넘긴 그의 공연 가운데 딱 한 번 찾아가 넋을 잃고 그를 들었던 것 말고는 눈 한 번 마주친 적이 없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 면 나의 한 시대도, 취기 어렸던 청춘도 그렇게 한순간 저물었음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절감했던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 미루 어 짐작할 뿐.


그리고 또다시 그해 겨울, 여전히 나는 김광석의 목소리에 취해 살았다. 무엇도 아닌 그가 유작으로 남긴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술 독에 빠져서 말이다. 여전히 따스한 자취방의 그녀가 붉디붉게 화 를 낼 정도였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부치지 않은 편지’는 죽기 전 김광석이 시인이자 작곡가인 백창우와 함께 발표하려 했던 앨범에 수록될 곡 중 작업을 맞춰 놓았던 두 곡 가운데 한 곡이다. 백창우가 정호승의 시 ‘부치지 않은 편지2’에 곡을 입혔고 막걸리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는 김광석이 기타와 하모니카를 둘러메고 노래를 불렀다.


당시 시를 전공하던 나로서는 좀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김광 석의 목소리를 통해 정호승의 시, ‘부치지 않는 편지 2’를 알았다. 물 론 정호승의 시는 그의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에서부터 최근 <당신을 찾아서>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또 그리 몰입해 탐독하지 않았던 까닭일 터이다.


생각해보면 정호승의 대개의 시는 항상 낮은 자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으나 ‘너무 연약하지 않냐’는, 내 어줍잖은 평가와 객기가 빚은 참극이다. 그의 목소리가 다름 아닌 ‘위로’라는 것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정호승의 시는 언제나 소외된 자들의 모습이거나 그들을 위로하는 작은 목소리다. 그러나 아프고 슬픈 자들보다 높은 곳이 아닌 스스로 낮아져서 더 아프고 더 슬픈 방식의 위로다.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내놓은 뒤 그는 “이 어렵고 괴로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연히 나의 시집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시대의 한 사람 시인으로서 얼마만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인지, 깊은 밤 홀로 추위에 떨며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라고 했다.


이렇듯 슬픔은 그가 가진 시세계詩世界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 언은 아니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이별을 늘 천착하고 스스로 그 세계에 매몰되기를 괘념치 않는다.

마치 소월의 시가 조선 민중의 한(恨)과 맥이 닿아 있는 것처럼 그의 슬픔은 자꾸만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 잘 숙성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뼈아픈 회한과 자기성찰로 슬픔의 날을 갉고 닦아 빛을 내기도 한다.

마치 슬픔의 가장 마지막 에 이르러서야 진정 농염하게 익어 있는 기쁨을 만날 수 있다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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