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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는 남자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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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5  17: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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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사계절이 명확한 우리나라는 추운 겨울을 대비해 땅이 해동을 하면 두엄을 뿌리고 논밭을 갈
아 봄이면 철에 맞추어 필요한 종자를 파종했다.


여름이면 땀 흘려 가꾸고, 가을이면 수확을 하여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갈무리를 하였다. 노인들은 우려와 격려와 덕담 어린 어조로 젊은이들에게 24절기를 지켜 농사를 잘 지으라며 “철들기”를 당부하곤 하였다.

이제 나이가 드니 생산보다는 소비에서 철의 변화를 느끼는 즐거움이 잔잔히 다가온다.

집사람이 몸이 불편하여 최근 몇 년 동안 5일시장에서 식재료를 사 나르게 되었다. 벗들은 나에게 불편을 우려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나라를 여행해보면 가장 먼저 들리고 싶은 곳이 그 지역의 시장이 아닌가.

시장엔 온갖 물산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활력이 넘쳐 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지역특산물의 냄새가 물신 풍긴다.

우리 지역 5일 시장도 평범하고 무심히 여겨왔는데 다녀보니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각종 상품들이 호기심을 부추기고 살갑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단골 거래처가 생겨 반가운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다. 어쩌다 보니 내가 다니는 코스가 정해져있어 어느새 정이들어 소박하고 욕심 없는 얼굴들이 참 보기좋다.

뒷산에서 캔 취나물이나 고사리, 논·밭 주변에서 하나하나 모운 엉겅퀴와 머위대, 다 팔아야 2만 원이 안 될 나물들을 펼쳐 놓고 점심시간 전에 다 팔고 가고 싶다며 애절한 눈빛을 보내오
는 순희와 영자들. 양파, 대파, 쪽파, 달래와 각종 생선 등 온갖 농수산물들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올망졸망 예쁘게 진열 돼 있다.

노래와 책들은 연분과 의미가 깃든 돌쩌귀 배필 천생연분 같은 고뇌와 열정으로 정이 깊은 사랑만을 노래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그저 가볍고 따뜻하고 부담 없이 마주치며 주고받는 잔정의 나눔에서 삶의 의미를 느껴 본다.

웃음과 담소 소리가 트로트가 되어 울려 퍼진다.

의례 차려준 밥상을 받다 계절 따라 변하는 식재료를 관심 있게 살펴보고 고르다 보니 상품의
품질을 알아보는 안목도 조금 생기고 식재료마다 제철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평상시에 주위에서 대충 들은 이야기지만 주워들은 이야기와 직접 사고 체험한 차이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봄 도다리와 쑥국, 갑오징어와 원추리나 미나리회, 봄에 먹어보는 가자미류와 조개류 그리고
주꾸미와 멍게. 초여름부터 제맛이 나는 장어류와 오징어 병어 그리고 가을에는 대하와 같은 새우 종류와 우럭과 농어회, 겨울에는 꼬막과 굴을빠뜨릴 수가 없다.

낙지 탕탕이도 사는 시기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똑같은 숭어라도 일반적으로 숭어라고 하면 특이하게도 보리(개)숭어를 말하며 3월부터 6월 사이 봄에 맛이 좋고 참숭어는 가숭어라고도 하며 11월~2월 사이 겨울철에 제맛을 경험할 수가 있다.

곧 칠게(찔룩게)가 알이 배 고소한 계절인 5, 6월이 다가오고 있다.

제철 음식에 관심이 모아지던 시기에 미국에서혜성처럼 등장한 이란계 캘리포니아 출신 요리사사민 노스랏이 쓴, 요리의 기본 원리를 알려주는 ‘복음서’로 평가받는 『소금 지방 산 열』이라는 책의 소개 글을 읽어 보았다.

노스랏은 샌프란시스코 유명 맛집 셰 파니스에서 환상적인 저녁을 먹어본 후 똑같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감격하여 식당 사장에게 열정적인 편지를 보내 그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요리에 문외한인 그는 식당 주방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돼 소금, 지방과 산, 열의 원리를 깨우치게 된다.

그는 몸의 감각을 집중하며 소금의 농도와 시간 정도에 따른 고기의 질감, 버터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식감, 신맛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미, 센 불과 약한 불의 차이 등 끊임없는 반복과 관찰을 통해 ‘맛보기’의 묘미에 매달렸다.

“너무 맛있어 계속 먹고 싶다고 느낄 때까지,맛을 보는데 도저히 멈출 수 없을 때까지” 맛을 보고 또 보기를 계속하며 기록했다고 한다.

노릇노릇, 보글보글, 지글지글이 자신의 오감을 춤추게 하고 있다 확신하며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손님들의 모습에 삶의 의미를 두었고, 심지어 요리가 자기의 사람됨을 만들어가고 있다고까지 생각하였다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모습은 타인에게도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요즘은 장날이 기다려진다. 오후 늦게 장을 찾을 때는 만 원을 주고 우수 5개를 포함해 도너스
25개를 사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물건 파는 아주머니들에게 나누어 줘도 본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주머니들에게 “총각이 처녀에게 도너스 하나 사주는 것이 이유가 있어야 하냐”라며 너스레를 떨고 서로 웃음을 주고받는다.

똑같은 식재료라도 관심과 정이 깃든 것이,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이 정말 맛도 다르다. 아픈 집사람 덕에 장보기가 즐거움으로 느껴지며 행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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