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진 (사)한국민족춤협회 삼임이사

▲ 양향진 (사)한국민족춤협회 삼임이사

코로나19로 인해 이후 삶의 방식이 바뀌게 된다고들 한다. 필자의 생각도 그렇고 이미 바뀐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너무도 일찍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삶으로 받아들였기에 지금의 내가 있기도 하겠다. 이 현상은 지금뿐만이 아닌 예전에도 늘 나타났던 것이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들은 일어날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심지 곧게 국가적으로 전통문화를 지켜오고 계승·발전시켜 온 것은 당연히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지역의 향토전통문화를 이어오고 발전시켜 옴도 쉽지만은 않았을 일이다. 물론 제도적 장치가 허술했음에도 또,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불안했음에도 그래왔으니 더욱 쉽진 않았을 터이다.

사회구조와 시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국격을 향상시킬 계기가 됨도 그동안 잘 참고 버텨왔음에 그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모든 게 제대로 바뀌면 좋겠다. 일단 국가의 문화정책과 자치단체의 문화정책들이 그래야 되겠기에 최근의 어떤 사실을 기준으로 그 생각을 적어본다.

얼마 전 문체부에서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를 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필자는 속이 몹시 메스꺼워졌다. 한국은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및 페미니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나라다. 그런 와중에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고착시키고 주로 여성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묘사하는 트로트를 청소년에게 권장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아래 내용은 지난 5월 필자가 상임이사로 있는 (사)한국민족춤협회의 텔레그램에 올라온 글을 참고로 간략히 편집한 것이다〉

당장 기억 나는 트로트 가사 몇 개만 옮겨 본다.

내가 미워도 한눈팔지 마 너는 내 여자.

여자는 꽃이랍니다 혼자 두지 말아요.

언제나 멋진 당신 가슴에 안겨 꽃이 될래요 십 분 내로.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안 돼요, 왜 이래요, 묻지 말아요, 더 이상 내게 원하시면 안 돼요.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내 사랑인걸요.

헤어지면 남이 되어 모른 척하겠지만 좋아해요, 사랑해요, 거짓말처럼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을 가득 넣어주세요, 가슴에 넘치도록 넣어주세요.

사랑의 약발이 떨어졌나 봐 나 지금 외로워요.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 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나봐요.

당신 없인 못살아 정말 나는 못살아 당신은 나의 배터리.

그대여 사랑의 사랑의 사랑의 초인종을 눌러주세요.

그대가 원하면 원하면 원하면 언제든지 눌러주세요.

이 오빠 뭐야 이 오빠 뭐야 무턱대고 다가와 작업 걸지 마

이 오빠 뭐야 이 오빠 뭐야 처음 본 나에게 훅 가버렸네....

모두 여성 트로트 가수가 부른 노래들이다. 노랫말 속에서 여성은 남성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 혹은,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섹스어필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반대로 남성 트로트 가수들은 이런 노래를 부른다.

누구나 사랑하는 매력적인 내가 한 여자를 찍었지.

아름다운 그녀 모습 너무나 섹시해 얼굴도 샤방샤방 몸매도 샤방샤방.

모든것이 샤방샤방. 얼굴은 브이라인 몸매는 에스라인 아주 그냥 죽여줘요.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 다 내가 해 줄게.

현실일까 꿈일까 사실일까 아닐까 헷갈리고 서 있지 마.

사랑이 뭔지 그동안 몰랐지 내 품에 둥지를 틀어봐.

나는야 당신의 사랑의 나무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백번 천번도 찍을 수 있어 내 옆에 당신만 있어 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사랑이란 나무도 인생이란 나무도.

행복이란 믿음의 나무도 멋있게 키워서 내 품에 안고 가.

당신 품에 안겨 주고 싶어….

남성 트로트 가수의 노랫말 속에서 남성은 주로 여성에게 사랑을 베풀거나 여성을 노골적으로 품평하는 시혜적이고 우월한 존재로 등장한다. 혹은 남성으로 살아가는 고단함을 하소연하거나 근엄하게 인생을 논하기도 한다. 노랫말이 여성 트로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와 질적으로 다르다.

성 역할을 고착시킬 뿐인 이런 것들은 당연히 성인들의 정서에도 대단히 좋지 않다. 그런데 페미니즘 교육은커녕 성교육조차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트로트를 권한다?

오빠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교'와 '앙탈'을 열심히 연습하는 여성 청소년들 혹은 여성은 내 소유물이니 내가 책임지고 내가 품평한다는 가부장적인 포부를 키우는 남성 청소년들을 정부 차원으로 육성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정부차원에서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자치단체에서도 향토전통문화에 우선한 정책들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좋겠다. 물론 동호회나 연예프로그램 등은 정책과 상관없이 알아서들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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