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엽 광양 전몰군경미망인협회장

베트남전쟁 참전한 남편과 40여년 함께 해
악몽에 시달리는 남편 보며 배우자로서 가슴 아파
전몰군경미망인협회 잘 이끌어 지역사회 봉사로 환원하고파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 국가유공자들이 전쟁의 후유증을 몸과 마음으로 떠안고 살아갈 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짐을 함께 나누고 살아온 이들의 무게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이부엽 광양 전몰군경미망인협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국가유공자 가족의 삶을 들여다봤다.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점잖고 집안 좋은 건실한 청년이 있으니 맞선을 보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얼굴 한번 보고 혼례를 올려 40여 년 함께 자식 낳고 세상 모진 풍파 이겨내며 든든한 그늘이 돼주었던 이가 내 남편이다. 늘 남편을 떠올리면 그립고 애잔하다”

이부엽(67) 광양 전몰군경미망인협회장은 꽃다운 나이 20살에 남편 故박경식 씨를 만나 결혼 했다. 결혼 당시 남편은 이미 베트남전쟁을 참전하고 온 후였다. 결혼 당시 27살이었던 남편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유증으로 허리통증을 호소했다. 일시적일거라 생각했던 허리통증은 결혼 기간 40여 년 동안 고질병으로 남편을 따라 다녔고 수면 시 다리 떨림까지 이어졌다.

이 회장의 남편 故박경식 씨는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다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베트남전쟁에 자원입대해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광양 옥룡으로 돌아와 이 회장과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참전 이후 허리통증과 다리떨림, 그리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40여 년 안고 살다가 2014년 아내의 곁을 떠났다.

이 회장은 “남편은 막역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면 베트남 참전 이야기를 꺼내곤 했는데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현장을 눈으로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술기운 빌린 넋두리가 그립다”며 “참전 후유증으로 자다가 벌떡 일어나거나 소리를 지르 등 자주 악몽에 시달렸는데, 내가 놀라는 건 둘째치고 악몽을 꾸는 본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다”며 그리움의 눈물을 훔쳤다.

2014년 남편이 세상을 등지고 3년이 지나 이 회장이 광양 전몰군경미망인협회에 가입하면서 바로 회장직으로 취임하게 된다. 회원들 대다수가 고령이라 젊고 의욕적인 이 회장을 추천하는 이가 많았기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막중한 책임의 무게를 견뎌내며 현재 4년 동안 협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전몰군경미망인협회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과 경찰의 유족 중 국가유공자 등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금을 받는 유족의 부인을 회원으로 하는 공법단체로 회원이 상부상조해 자활능력을 배양하고 순국자의 유지를 이어 조국통일과 사회공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보훈단체다.

▲ 광양 전몰군경미망인협회 호국순례 일정 모습

14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광양 전몰군경미망인협회는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결속을 다지는데 평균 35명 정도가 참석해 식사와 함께 협회 일을 상의한다. 또한 어린이날 행사 추진, 상이군경협회와 연합해 지역사회 정화 활동을 펼치는 등 공식적인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은 “고령이신 회원들이 많지만 지역사회 현안에 대한 소통 창구가 되는 매월 정기모임을 손꼽아 기다리시고 회의 2시간 전부터 사무실에 나와 담소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협회에서 추진한 행사에도 불편한 몸을 다잡으며 많은 분이 동참하는 단합된 힘을 가진 지역사회 여성단체”라며 “다른 보훈단체처럼 사무실 운영비와 공식적인 보훈순례에 대한 지원 정도만 이뤄지고 있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가와 지역사회 공헌에 이바지 하는 여성보훈단체로서의 잔잔하지만 꾸준한 행보를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 전몰군경미망인협회 월례회의를 주최하고 있는 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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