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퇴직 후 농사일에 몰입해본 참 좋은 시절이 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소두엄을 깔고 갈아엎기를 반복하며 작물의 숫자를 늘려가며 50여 작물과 대화하고 다양성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심취하며 자식들 떠나간 자리를 메워본 경험이 있다. 어느 날 세우를 맞으며 정신없이 고추 모종을 정식하고 있었는데 언제 오셨는지 이웃 밭 할머니가 밭두렁에서 내려다보며 “고추 모는 넘어지지는 않되 흔들리게 심어야 아는데 농사일은 초보 인가 봅니다.”하고 말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아 넘어지지는 않되 흔들리게 심으려니 시간과 노력이 배는 더 걸렸다. 그 뒤 나무는 흔들려야 광합성 작용에 필요한 수분과 공기. 각종 영양분의 오르내림이 원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사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서는 “움직임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꿈을 실현하는 힘이 있다.”라는 글을 책에서 읽고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산다.

집사람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서울의 유수한 병원을 전전하며 응급실이나 입원실에서 근심과 두려움으로 생기를 잃은 분들을 바라보며 저분들은 얼마나 걷고 싶을까 하는 생각과 너무나 당연시 생각했던 걷는다는 것의 소중함을 늦게나마 깊이 인식하고 있겠지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 경험 또한 있다.

나이 들며 가져보는 올바른 인식은 두려움과 우울함을 막아주고 삶에서 행복을 찾아 간직하는 소중한 동기가 된다. “하나의 작품이 된 인생에는 흥미 있는 시나리오가 숨어있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체험과 공감이 없다면 그저 흘러들은 말에 불가할 것이다. 늦은 나이의 경험이지만 농사든, 독서나 글쓰기든, 걷고 인사를 주고받는 일상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실천을 하였기에 나는 슈테판 클라인의 다음 말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은 일에 숨겨져 있는 자극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알고 익숙한 것을 매번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의 삶은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뭇 생명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질 때 스스로의 생명도 함께 남루해진다.”라는 말이 선명하게 다가올 때가 있었을까? 잊을만하면 화재사건으로 38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그 져 욱하는 화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구타하고 죽이는 일이 예사가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조금 안정감을 찾으니 못 견디겠다는 듯이 클럽과 주점에서는 몸을 흔들고 술을 마셔야 살 것 같다는 듯 광란의 몸부림을 쳤다는 TV 뉴스가 들려온다. 맹자는 일을 할 때만이 인간은 잡념을 잊고 평정심 갖는다고 했다. 적당한 일거리는 고되고 귀찮은 것이 아니라 생활의 리듬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축복이란 뜻일 거다. 우리는 땀 흘리지 않고 편함을 지향하는 생활 속에서 일의 소중함과 인내심을 잊어가고 있다. 우주의 역사 138억 년은 그만두고라도 지구 즉 자연의 역사는 46억 년 이상이고 인류의 역사는 500만 년이라면 신에 의존의 역사는 농경시대 이후라 하니 1만 년 이하일 것이다. 오늘의 코로나 사태가 이야기하듯 인간은 인류를 탄생시킨 자연을 경애하고 그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하이데거는 “우리의 삶이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자연과 사물 등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경이와 기쁨을 느끼는 인간 고유의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늘날처럼 냉장고와 통장이 없었던 시대인 수백만 년 전부터 인류는 하루하루를 수렵과 채집을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오직 인내로 버틴 삶의 DNA를 우리의 몸속에 남겨 주었음을 상기하자는 말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가 변화해야 할 가장 중요한 생활의 태도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위한 키워드로 나눔과 인내와 도전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나는 도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한다. 지금까지 도전은 풍요와 편안함과 안전을 위한 진취적인 나아감에 우선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한정된 자원, 인간의 폭증 속에서 더 많이 가지려 하는 경쟁은 자연의 파괴와 많은 종의 감소와 멸종, 빈부격차를 가져왔다. 가장 소중한 내 몸도 과식보다는 소식이 좋고 욕심을 줄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여야 장수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현상 유지의 평온함이나 줄여 가는 가벼움 도 경험해 보아야 한다. “정빈(淸貧)이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그것은 스스로의 사상과 의지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간소한 삶의 한 형태이다.”라는 말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소유를 최소화하여 정신활동을 자유롭게 한다. 라는 의미일 것이다.

공허와 방황은 내 몸과 마음이 내가 밟고 서있는 땅으로부터, 일과 인내심으로부터 틈이 생겼을 때 생겨난다. 자존감은 하루하루를 애정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살아갈 때만이 키워진다. 역사의 인물 중에 나는 조수삼을 기억한다. 82개국의 풍물을 소개하는 『외이 죽지사』라는 책을 쓴 분이다. 87세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83세에 진사 급제를 했다 한다. 시작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끝은 잊고 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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