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혈기가 넘치는 청소년기에 사춘기思春期가 있다면 노년의 황혼기에는 사추기思秋期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념思念이 단풍보다 곱고 저녁노을보다 황홀하다. 주책없는 생각의 환상일까 열심히살아가는 충만한 삶의 호기심일까.

칠순 기념으로 가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 베이스캠프에서 비몽사몽간에 손오공을 만나 인생을 즐겁게 살겠다고 다짐한 연유일까. 바로 그 산에서 생을 마감한 산악인 김창호의 말대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라는 말이 감염이 되었을까.

늦으막에 그래도 열심히 책을 읽으니 공자께서 가상히 여겨 화두 하나쯤 던져주셨을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막둥이의 모습을 저세상에서 보시고 어머니가 웃으며 보내주신 음덕일까.


비교되는 한 단어의 생각은 개념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고 생각을 넓혀준다. 중요하게 회자되는 청소년기에 인생을 출발하는 사춘기가 있다면 삶을 정리하는 황혼기에는 사추기가 있어 두시기를 비교해보며 노년의 삶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에야 떠오른 것이 어쩌면 늦은 감이 있지만, 턱수염이 까무잡잡 나고 여자 친구와 세상이 달리 보이던 시절, 질풍노도와 같이 마음과 몸이 팽창하는 시기, 도전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진취적이며, 때론 비윤리적이고 난폭한 시기가 사춘기라면 이에 비교되는 사추기의 마음가짐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타인과의 거래 관계에서 이해득실을 따지지만 나는 내 몸과 내 영혼이 매일의 삶에 복기를 주고 받으며 그 공과를 내 얼굴에 흔적으로 남긴다고 생각하며 산다.

등산의 경우 젊은 시절 정상을 향한 발걸음은 벗들과의 대화 중에도 선의의 경쟁과 정복욕이넘쳐났다. 요즘은 하산이 더 신경 쓰이고 눈에 들어오는 것도 많다. 관절을 보호하고 넘어 잘까 신경도 쓰인다.

봄의 산이 새 싹과 꽃을 피우는 환희의 산이라면 가을의 산은 마지막 생명을 불태운 낙엽들이 미련 없이 떨어져 나무의 겨울나기를 돕고 기꺼이 거름이 되어준다. 태어남 못지않게 물러남 또한 축복이며 순리임을 보고 익힌다.


플라톤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관중석’이라 했던가. 칭찬해주고 손뼉 쳐주어도 외람되보이지 않고 진심으로 축복해 주어도 과장으로 비치지 않는 나이, 편안하게 쉬어도 이해받을 수 있는 나이에 감사하며 살고자 한다.


먹고사는 일에서 한발 물러나면 긴장을 잃고 무료해질 수 있다. 유튜브에는 요즘 “근력이 연금보다 강하다”라고 권장한다. 저금리 시대와 코로나 사태를 보내며 연금은 최고의 재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일 10분씩만 꼬박꼬박 부어도 1년이면 근력이라는 이자가 20%가 는다고 한다. 고금리 유혹에 패가망신했다는 뉴스가 종종 뜨는데 남에게 주지 않고 내 몸에다 쌓아가는 것이니 믿을만한 장사가 아닌가. 매사가 그러하듯 문제는 실천이고 인내인 것 같다.

서울 벗에게서 카톡이 왔는데 자식들은 부모 생각과 달리 부모와 전화나 영상통화에 부담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나 영상통화를 하며 늦게 받는 딸아이들에게 ‘2차대전 기록 영화’처럼 받을 수 없냐고 호통을 치곤 했는데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요즘 손주 녀석들과 영상통화가 가장 즐거운데 착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었는가 보다. 나이가 드니 몸만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생각도 유연성이 부족해진 것 같다. 요즘 나의 행복이 내 노력 때문이 아니라 심성 고운 자식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 사는 세상에 돈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서른 살 백만장자』라는 책에는 결핍을 교훈으로
삼고 투잡도 마다하지 않으며 수입의 70%를 9년 이상 저축하는 등 최선의 노력으로 일생에 필요한 100만 달러를 30세안에 벌고 조기 은퇴 후 여행을 즐기며 산다는 주인공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그렇게 못한 것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퇴직 후 나는 10여 년간 농업에 전념해본 시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통한 것은 자식들과 친척들에게 택배 보내주는 것 외 수입은 없었지만 돈을 거의 쓰지 않고도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흥미를 가지고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맹자는 “대장부는 다른 사람의 인정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는 사람”이라 했다. 데카르트는 “나는 이 지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책을 나에게 주는 사람보다 내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내 여가를 줄길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을 항시 더 고맙게 여긴다”라고 말하곤 했단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죽기 전 40년을 지렁이 연구로 여생을 보냈고 네덜란드의 위대한 철학자 스피노자도 말년에 종종 거미를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한다. 자랑할 것도 없지만 부러워하지도 않는 삶,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는 당신과 나의 이 평범한 삶이 평화롭고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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