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광양여자고등학교 2학년

김민서 광양여자고등학교 2학년

부쩍 요즘 들어 기다리는 일이 잦아졌다. 약속시간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상대방을 기다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궁금한 무언가를 나름 용기내어 물어보고, 그 답변을 기다리는 것과 식당이나 카페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것까지 돌이켜 본다면 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늘 누군가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자면 어린이집에 다녔을 때가 떠오른다. 동네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엄마와 아빠는 맞벌이인 탓에 그곳에서 운영하는 야간반에 남았다. 늘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면 밤까지 있었다. 매일 엄마를 기다렸지만유독 기억나는 밤이 있다.

그날 유치원 저녁은 점심에 먹은 시래깃국과 식단 구성이 비슷했던 반찬들이 나왔다. 야간반친구들은 수가 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항상 작은 책상 둘레에 옹기종기 앉아 선생님과 밥을 먹었다.

그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은 같이 야간반을 다니던 친구의 엄마였기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래깃국이 나왔던 그 날 밤 선생님은 밥을 남긴 친구에게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하나도안 아픈 꿀밤을 주셨다. 그게 맞기 싫어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분명 엄마가 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5명도 채 되지 않는 친구들이 있는 방에 있노라면 슬픔이 밀려왔다. 한 번도 엄마가 안 온 적은 없었고 그럴 일이 없다는 것도 분명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밥을 다 먹고 영화가 끝나도 엄마의 차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울렁거리고 가슴이조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고 영화도 끝이 나면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친구들이 한둘씩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의 회색차가 급하게 멈추는 소리를 내면 헐레벌떡 뛰어 오시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고 그때야 난 살포시 웃으며 엄마 손을 잡았다.

어쩌다 엄마가 생각보다 빨리 오시면 친구들이 날 배웅해 주었는데 기쁨보다는 모두가 같이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요즘도 예전에 다녔던 어린이집을 밤에 지나칠 때가 있다. 시간이 늦었다고 생각되어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볼 때면 어김없이 지난 시간이 소환된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야간반 친구들이 있을 것이고 동시에 어린 시절 한 공간에 머무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던 어린친구들이 생각난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렸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린 마음에 원망도 했던 것 같은 숨길 수 없는 불안이 존재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차에서 내려 급하게 뛰어와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자면 언제 조바심을 쳤는지 모르게 차 있던 불신은 사라져 버렸고 어느새 돌봐주시던 선생님께 죄송했던 생각도 겹쳐진다.

올 것을 아는 확신을 갖는 기다림과 기약 없는 기다림은 언제 어느 시간에나 존재한다. 끝이 있는 것은 어쩌면 기다림이 아니라 약속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은 더 이상 지루한기다림이 아닌 그저 묵묵히 견디어 나가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다림은 힘이 든다. 비슷비슷한 시간이 계속 흐름에도 달관할 수 없이 초조해지기에 불쑥불쑥 갑갑증에 화가 나니 말이다.

보고 싶음에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있고 해야 할 말이 있어도 건넬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대책 없이 에누리 없이 아주 정직한 기다림의 자세로 그때를 묵묵히 버티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보이는 그런 날들이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아 그리던 엄마의 손 잡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의심이 자라던 날처럼 시간이 넘어가고 기다림이란 말조차 퇴색되어간다면 묵묵히 버틴 끝에 “오래 기다렸다”는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고작 그 두 어절이 그간의 사연을 대변해줄 수는 없지만 그 말을 할 수 있음에 살포시 미소 지으며 감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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