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광양여자 고등학교 2학년

▲ 김민서 광양여자 고등학교 2학년

이광수의 ‘무정’에서는 근대적 가치관을 지닌 병욱과 형식을 주축으로 하여 영채, 선형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나서기로 한다. 당시 삶이 궁핍하여 살기 어려웠던 조선인들을 위한 길로 교육과 계몽이 먼저라고 생각한 그들은 조국을 위해 계몽을 택했다. 그들이 원했던 조선은 근대적 가치관을 지닌 조선인들로 문명적 후진국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무정의 주인공인 형식은 당시 조선 상황은 전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식민지 백성으로 강제되어진 체제에서 핍박받는 국민들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매일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때의 보편적인 생각과 인생관은 식민지사관으로 철저히 세뇌되어졌다. 하지만 개인이나 사회의 노력으로 그들의 삶이 개선되거나 향상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궁핍하고 가난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교육이고 계몽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집단이든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심사숙고해야 하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학교 내에서나 사회에서도 크고 작은 집단들은 여러 개가 존재하고 그 집단의 중심에는 늘 지도자가 있다. 지도자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그가 속한 집단의 향방 또한 영향을 받고 행보도 좌우된다. 사익을 추구하고 기득권의 잇속만 채우려는 이들과 영합하여 국가 정책을 결정한다면 고릿적에나 가능했던 절대권력인 독재국가가 될 것이다.

겸손하여 미약해 보여도 안으로 흔들림 없는 정신력이 무장된 선한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라면 여러 집단과의 불화에서도 올바른 판단과 가치관으로 수많은 균열을 매끈하게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공동의 이익은 곧 개인의 이익을 묵과하고선 얻을 수 없기에 소수 기득권을 위한 정책보다 대다수 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세뇌되어진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아닌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 받으며 살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는데 치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이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는 없기에 지나친 사익 추구는 사회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이기심을 지양하고 자신의 권익을 지켜낼 수 있는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를 바란다. 가족의 개념이 광범위해지면서 유대관계가 느슨해졌고 차츰 개인주의의 성향이 짙어지는 것도 문제이다.

기본이었던 가정의 사회화 과정이 확대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까지 오롯이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교육의 몫이다. 모두가 같은 것을 배우지만 각자 다른 의견과 생각으로 우린 그 문제를 바라보거나 대한다. 동일한 뿌리지만 서서히 다른 방향으로 뻗쳐가는 가지처럼 무수한 방향을 바라보며 우린 방언을 쏟아낸다. 서로의 말이 급해 미처 상대의 마음을 생각을 말을 알아주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급기야는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갖고 있는 윤리적 의식 위에 자리한 교육이다. 배움의 끝에 절망을 안고 불평등만 자리 잡았다 해도 민들레처럼 굳세게 일어나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세월을 넘나들면서 살아남았다. 잊었던 정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현실에 알맞은 대다수가 상식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통념이 필요하다.

스스로 깨어있는 사람이 주변을 깨울 수 있다. 직위에 관계없이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 올바른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자신을 짓누르는 수많은 악의 유혹에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고민과 갈등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작은 일에 겁먹고 물러서기보다 한발 앞서 문제를 해결하려 다가서고 책임의 무게를 당연한 듯 즐겁게 받아들인다면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도 무정의 한 동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작은 시선을 크게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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