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에게 - 문병란

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 시인 문병란

  1. 년 3월 전남 화순 출생
  1. 년 현대문학 추천 완료

시집 <죽순밭에서> 외 다수

박인환 시문학상 외 다수

  1. 년 9월 사망

 

시 ‘직녀에게’는 70년대 중반에 시인 문병란이 발표한 시다. 1980년대 초 출간한 시집 <땅의 연가>에 잔잔하게 들어앉은 시다. 특히 문병란의 수많은 시 가운데서도 일반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시가 ‘직녀에게’다. 이는 전남 출신 가수 김원중이 원작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며 호흡 역시 크게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동명의 노래 <직녀에게>가 대중적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1981년 대학가요제에서 노래 <바위섬>으로 대상을 거머쥐며 얼굴을 알렸던 김원중은 대상곡 <바위섬>이 1980년 고립됐던 ‘광주’를 의미한다는 것을 숨긴 채 대회에 나섰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대학가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자신은 방송 출연이 잦아들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했던 김원중이 그의 시선을 바투 피력한 것이 바로 문병란의 시 <직녀에게>에 곡을 붙여 커밍아웃했고 이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직녀에게>는 모두들 알고 있듯 연정을 품고도 만나지 못하는 견우와 직녀 설화에 기대 창작된 시다. 그를 통해 문병란은 같은 피가 흐르는 한민족이면서도 갈라선 채 만나지 못하는 막막한 남북의 현실을 가슴 절절하게 읊조리고 있다.

이념과 사상을 통한 인위적인 갈라짐을 너머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를 목놓아 애끓게 부르면서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결국 가장 큰 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결국 통일이다.

그래서 시 <직녀에게>에 찍혀 있는 가장 큰 방점은 다름 아닌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특히 현재 답답하게 막힌 남북 관계를 생각할 때 다시금 꺼내 읽는 <직녀에게>는 남북 위정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을 터다.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하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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