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민신문
오피니언칼럼
비밀리에 진행 된 작업 일왕 일가의 방공호 고자쇼(御座所)나가노 여행 속 역사의 발자취 Ⅳ
광양시민신문  |  webmaster@gycitize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8.17  21:05:47
url복사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김보예 쓰쿠바대학교 교육학 박사과정수료

2020년 8월 4일, 한일 외교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예고된 돌풍이었다. 2020년 8월 3일, YAHOO! JAPAN 국제 부분 뉴스의 코멘트 랭킹 1위 기사가 <징용공 「압류주식」 현금화 시작, 일본기업 철수 리스크로 한국 국민이 치르게 될 여파 (徴用工「差押え株式」現金化開始、日本企業撤退リスクで韓国国民が払うツケ)>였다.

2018년 10월, 한국대법원에서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대하여 징용공 피해자 1명당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판결 이후,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8월 4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 의 한국 내 자산에 관련한 ‘압류 명령 결정 등의 공시송달’이 효력을 발생했다. 신일철주금은 불복을 청구하는 즉시항고에 나서겠다고 선포를 했다.

지금부터 역사문제가 양국의 경제문제로 번질 것이다. 우린 역사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역사적 지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일왕 일가의 방공호 고자쇼(御座所)

지난 3편에 걸쳐서 나가노에 남겨진 강제노역의 흔적, 마쓰시로 대본영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지난 편에서 언급하였듯이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마쓰시로에 있는 3개의 산(죠잔 , 마이쓰루야마, 미나카미야마)을 중심으로 젠코지 평야 일대에 분산시켜 만들어졌다.

지난 나가노 편에서는 마쓰시로 대본영 추도비 수호회(松代大本営追悼碑を守る会, 이하 '수호회'로 칭한다)의 사무국장을 대행하고 계시는 히다 히데유키(喜多英之)씨와 회원분들을 만나 ‘죠잔’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번 편에서는 ‘마이쓰루야마’를 방문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마이쓰루야마(舞鶴山) 지하호는 현재 기상청의 지진 관측소로 쓰이고 있어서, 일반인에게 내부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마이쓰루야마’는 일왕 일가가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하호에는 없는 지상 시설이 만들어졌다. 바로, 고자쇼(御座所-귀인이 거처하는 방)이다.

고자쇼를 총 3개의 청사(廳舍)로 만들어졌다. 제1청사는 일왕의 고자쇼, 제2청사는 황후의 고자쇼, 제3청사는 궁내청 시설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고자쇼의 천장과 벽의 콘크리트의 두게는 80~90cm이고, 지붕은 흙이나 나뭇가지로 위장되어 있어 상공에서는 시인(視認)하기 어려웠다.

▲ 기상청 지진관측소/사진=김지혁
▲ 일왕 일가의 방공호 고자쇼의 외부/사진=김지혁
▲ 일왕 일가의 방공호 고자쇼의 내부/사진=김지혁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당시(1944∙1945)의 금액으로 1∙2억엔이라고 감히 산출하기 힘든 거액의 돈이 공사비로 들어갔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저서 《신친일파》(2020)에 의하면, 1940년대 100엔이 지금의 200만원에 해당된다. 그러면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 건설에 들어간 비용은 최소 4조원이다. 거액의 공사 비용 만큼이나 수많은 노동자가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비밀리에 진행 된 작업과 행방불명이 된 노동자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의 건설은 1944년 11월 11일에 시작되어 1945년 8월 15일패전까지 약 9개월동안 진행되었다. 다른 지하호는 약 70~80% 완성되었지만, 고자쇼는 100% 완성된 유일한 방공호였다.

최소암(강제징용 피해자, 고인)씨가 남기고 간 증언에 의하면, 고자쇼의 마지막 마무리 작업은 건장하고 일솜씨가 좋은 6명의 남성이 남아 했다고 한다. 그런데 6명 노동자는 고자쇼 완성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6명의 노동자 중에는 최소함씨의 친구(조선인 강제징용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자쇼의 마지막 작업 날, 최소함씨와 친구는 술 약속을 하였다.

“몇 시쯤 끝나?”
“대충 3시쯤 끝날 것 같으니까, 내 숙소로 그 때쯤 와.”

최소함씨는 3시쯤 고자쇼가 있는 마이쓰루야마 방공호의 작업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이쓰루야마 방공호 주위에는 헌병으로 둘러쌓여 있다. 현병은 최소암씨에게 다가왔다.

“어떤 놈이냐?”
“오늘 3시쯤에 일이 끝나기로 한 친구랑 술한잔 하기로 했습니다. 들여 보내주세요.”

그러자 헌병은 총으로 위협하여, 최소암씨보고 돌아가라고 했다. 그렇게 터벅터벅 돌아온 최소암씨는 눈 감는 날까지 그는 친구와 재회하지 못하였다.

노동 배치와 민족차별.

수호회의 히다 씨의 설명에 의하면, ‘마이쓰루야마’에는 일왕의 지위를 증명하는 삼신기(三神器, 청동검∙청동거울∙옥)을 모시는 곳이 별도로 만들어졌는데, 그 곳은 젋은 일본인 남성만 일했다고 한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의 어렵고 위험한 작업은 대부분 조선인 징용자의 몫이었다.

작업 현장이 험난했기때문에 생명유지를 위한 의사소통은 필수사항이었다. 그래서 각 반의 작업 반장은 조선인이었고, 그 반장들을 관리하는 조장부터가 일본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기피하던 작업이 신성도 문제와 연류되니, 조선인을 배제하는 아이러니한 민족차별이 행하여졌다.

‘징용공 문제란 무엇인가요?’

히다 씨가 활동하고 있는 수호회 회원분들을 비롯하여,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強制動員問題解決と過去清算のための共同行動), 나고야 미쓰비시·조선 여자 노동 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협회(名古屋三菱·朝鮮女子勤労挺身隊訴訟を支援する会), 일본 제철 구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협회(日本製鉄元徴用工裁判を支援する会)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구제 재단·기금 설립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더하여, 역사 인식을 바로 잡기위해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징용공」문제>에 대해 세미나를 열고 있다. 세미나에서 나누어 준 팜플렛 표지에는 ‘징용공 문제란 무엇인가요?’ (徴用工問題ってなんですか?)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 또한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 중요한 포인트이다.

우리는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는 역사 문제를 덮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반대로 역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는 일본을 적대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솔직하게 내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과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 파악한 후, 우리의 아픔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의 어떤 점이 이토록 섭섭하지에 대해 명쾌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의「징용공」문제>에 대해 우리도 알고 있어야 할 8가지 포인트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광양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url복사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윤리강령 실천요강광고 및 판매 윤리강령 실천요강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57786, 전남 광양시 중마청룡길 30-7(중동), 2층  |  대표전화 : 061)761-2992  |  팩스 : 061)761-2993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 아 00164  |  등록일 : 2012. 1. 25 |  발행인·편집인 : 박주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주식
Copyright © 2011 광양시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ycitiz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