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후회 - 황지우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을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시인 황지우

  1. 년 전남 해남군 출생
  1. 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연혁’ 등단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외 다수

소월시문학상 외 다수

-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사장

시인 황지우는 1980년대는 물론 여전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광주 5.18의 영향을 받았고 기존 시문학 풍토를 거부하면서 파생된 해체주의 성향의 다소 파격적인 시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문단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다소간 부딪힘과 깨짐을 거치면서 오늘 소개된 시 ‘뼈아픈 후회’를 통해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 “뼈아픈 후회‘는 악마의 시대를 겪어온 자의 반성이 담겼으나 그것은 인류애에 대한 참회다. 시인 황지우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 원장을 거쳐 이사장에 올랐으나 이명박 정부시절 문화체육부 장관이던 유인촌에 의해 강제 퇴출당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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