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며칠 전 산행길에 개미가 이사를 하더니 장맛비가 내린다. 개미들은 어떻게 알기에 장마 전에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이사하는 걸까? 서양의 선교사들이 아마존 원주민들에게 옷 입기를 권장했더니 원주민이 보여준 동물들과의 신비한 소통능력이 현저히 줄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비 오는 날의 혼자 가져보는 산행은 외롭거나 무료한 기분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을 갖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언젠가 서울 행 고속버스에서 두 명만이 타고 가면서 느껴보는 무언가 미안한 마음과 창밖의 경치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던 그런 기분이랄까. 이름 모를 버섯들이 삐쭉 삐죽 고개를 내민다. 두꺼비가 눈을 말똥거리며 미끄러우니 조심히 가란다. 들 고양이들 때문에 뱀이 줄었다는데 작은 뱀이 오늘따라 두 마리나 앞을 지나가며 생각을 멈추게 한다. 염소 똥이 길에 널려있다. 육식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존재를 감추기 위해 똥을 교묘히 처리하지만, 초식동물인 염소는 풀에 거름이 되라며 비교적 고루 방사하는 것 같다.

311m 웅방산을 내려와 삼거리에 도착, 둘레 길에 접어드니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두 분이 앞장서 걸어간다. 비로 한적해서인지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해 따라붙으며 “반갑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넨다. “옷차림이 젊은이들 같아 보기 좋습니다.”라며 화답을 한다. “이 부근은 멧돼지가 출현하고 들개들이 보이는 곳이라 두 분을 보호해 주기 위해 따라붙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두 분이 약속이나 하듯 까르르 웃는다. 용기가 생겨 한 말 더 건넨다. “시청에서 둘레길 산행 시 최고 및 최저 속도를 정해 발표를 한다는데 들어보셨습니까? 두 분 처 럼 너무 빨리 걷는 분들 때문에 둘레길이 파손되고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을 방지하고,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조금은 빨리 걷자는 취지랍니다.” 허접하고 능청스러운 나의 농담으로 세 사람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옷을 입은 젊은 여자 분이 육군사관생도와 같은 자세로 정말로 빨리 걷는 것은 이런 것이라며 세 사람을 추월해간다. 스카프가 참 곱고 허리에 찬 물병이 야무지며 젊음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자칭 서산의 터줏대감이 된 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진심어린 인사와 웃음을 주는 어른으로 기억되길 소망해본다. 길에서 만난 몇 분들과의 대화가 생각이 난다. 40대에 뇌경색을 진단받고 50대에는 이석증 까지 경험하였다는 한 아주머니는 산행이 가장 좋음을 체험하고 있다며, 병은 소문을 내야하고 병증을 느낄 때 큰 병원으로 빨리 가야 함을 이야기 해 준단다. 말이 어눌하여 대화가 어렵다며 핀잔을 주는 남편 때문에 말문을 닫고 살다 오늘 한 시간 동안 1년 치 이야기를 다 한 것 같다며 소박한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 나이에도 때론 선의 경쟁심을 가져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날 역시 세우가 내리는 날로 기억된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작은 체구에도 야무지게 앞장서 걸어가고 있었다. 여자분이 혼자 갈 때는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상대 방의 마음을 배려해서다. 그런데 그분의 모습이 하도 경쾌하여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졌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근성일까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무언가 숨겨져 있는 서사가 궁금해진다. 그분도 나를 의식했는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한참을 걸은 후에야 길옆으로 멈춰서 뒤를 돌아보며 먼저 가라고 한다. 뜻밖에도 얼굴은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여느 때처럼 멧돼지와 들개를 끄집어내며 보호를 해주기 위해 따라서 왔노라 하니 그러면 같이 가잔다. 지금도 백운산 산행을 규칙적으로 하고 텃밭 가꾸기가 그리도 좋단다. 그렇게 산행을 해도 관절은 괜찮냐는 나의 질문에 대답이 예쁘다. “우리 어머니가 얼굴은 못생기게 나를 낳았어도 몸 하나는 건강하게 낳아주었답니다.” 헤어질 때는 “오늘 우연한 분을 만나 모처럼 많이 웃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 또한 이야기 내내 나눈 올곧게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서로가 확인하게 해준다.

습관이 건전하고 한결같은 사람은 생각도 다소 곧 하다. 얼굴에 행복을 쌓아가는 사람은 대화 속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칠맛을 더해준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삶이 비록 소박할지라도 긴 여운을 남기게 하고 상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준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관심과 나눔과 배려는 고독을 잊게 하고 살아가고 있음에 즐거움을 다북 눌려서 담아준다. 나쁜 것은 어지럽지만 좋은 것은 일치를 이루며 하나로 모이는가 보다.

지난 7월 25일 모 신문에 국민건강 지킴이 이시형 박사의 86세의 건강한 삶이 소개되었다. 30년간 감기 한번 알아본 적이 없다며 소식 •숙면• 유기농 한식 등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집사람은 내가 목에 스카프를 하는 것을 촌스럽다며 핀잔을 주곤 했는데 건강에 대한 신념, 생활 및 식습관에, 심지어 목에 스카프 한 것까지 나와 같았다. 최소한 아내가 스카프 문제로 시비는 하지 않을 것 같아 참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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