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 나의 피 - 김남주
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살찐 그대 가슴 위에 언덕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자유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가 만들어놓은 법이, 판검사가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형제들이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험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넘어 평짓길 황톳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리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구석기의 돌 옛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자유여 자유의 나무여
시인 김남주
1946년 전남 해남군 출생
창작과 비평 여름호 잿더미 발표
1980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징역 15년
시집 진혼가 외 다수
단재문학상, 윤상원상 외
1994년 췌장암으로 사망
김남주는 시인이다. 다만 시인이고자 했으나 시조차도 무기여야 했던 시대를 살았던 그는 시를 무기로 삼은 ‘전사’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체 게바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시는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자에게 맞서 싸우는 민주주의 제단 위에 기꺼이 타오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쓰여졌다. 그리고 그 삶 역시 그 제단에 함께 놓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인 김남주 앞에 기어이 혁명가라는 말을 덧씌웠으나 그는 죽는 날까지 시인으로 살다 죽었다.
시인의 아버지는 가난했고 끼니를 잇기 위해 남의 집 머슴으로 살았다. 그리고 한쪽 눈이 성치 않았던 주인집 딸과 결혼했다. 시인의 어머니다. 시인은 어머니를 사랑했으나 착취의 구조에는 결코 동의하지 못했다. 시인은 혁명을 꿈꾸었다. 권력이 민중을 짓밟는 세상을 뒤엎고자 했고 그 길 앞에 놓인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1980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을 선고받고 투옥된 그는 철학과 인문,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깊은 독서와 고민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완성해 가는 와중에도 시를 놓지 않았다. 종이가 없을 땐 우유팩을 긁어가며 시를 썼다. 그렇게 쓴 시들이 1984년 첫 시집 <진혼가>에 묶인 시편이다.
그는 1988년 형집행 정지로 출옥했다. 그리고 6년 뒤인 1994년 췌장암으로 죽어 5.18 영령들이 묻힌 망월 묘역에 함께 묻혔다. 출옥 후 그의 시는 무기라는 옷을 벗고 비로소 서정성을 되찾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