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진원 과수분야 수장자 선정“ 연구 및 농가소득 기여”
“후배 귀농인, 안정적 정착 도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 이평재 부저농원 대표

청명한 가을 물빛이 파랗게 출렁이는 봉강면 백운제를 돌아 최산두 선생의 생가를 거쳐 사또샘이 있는 옥룡면 양산마을 가는 길 중간 어느 메쯤에도 이미 가을은 웅숭깊다. 백운산 도솔봉 아래 해발 300m 중턱. 이곳에 이르면 밤엔 반딧불이가 어둔 밤을 별과 함께 밝히고 낮이면 다람쥐가 찾아와 뛰어노는, 그야말로 백운산이 빚은 청정한 산자락이다.

천연 알카리성 유황수가 지하로 흘러 토질이 비옥하고 석간수마저 흘러나와 물이 깨끗한 곳으로 손꼽히는데 사람 소리마저 아득히 멀어진 이곳에 둥지를 튼 부저농원에 가는 길이다.

그늘진 어느 골짜기와는 달리 맑고 따스한 태양의 빗살을 받는 곳인데 마치 백운산이 품은 봉황의 알이 부화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삶이 서산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후 21년 동안 땅을 일구기 시작한 부저농원 이평재(74) 대표가 지난 1999년 이곳에 농원의 터를 닦은 이유겠다 고개가 끄덕여진다.그렇게 찾아간 농원에도 가을은 찾아와 길목마다 낙엽이 수북하고 발효실도 은은하게 익어가는 중이다.

이런 부저농원에 최근 잘 익어가는 가을 같은 반가운 소식이 찾아 들었다. △식량작물 △채소 △과수 △화훼특용작물 △축산분야에서 탁월한 농업 기술을 보유해 지역농업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2020년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이하 농업기술명인) 수상자에 이평재 대표가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부터 5개분야 각 1명씩 농업기술명인을 선발하고 있는 농촌진흥청이 십수년 동안 토종 다래 연구에 매진해 오고 있는 이 대표를 과수분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현재까지 선발된 인원은 매년 5명, 올해 수상자를 포함해 현재까지 총 56명만이 농업기술 관련 ‘명인’반열에 올랐을 정도이니 ‘명인’ 칭호는 토종 다래 연구에 매달려 온 이 대표로서는 그간 연구성과에 대한 보람이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농촌진흥원은 과수분야 이 대표를 명인으로 선정하면서 품질과 생산성을 높인 다래 신품종 3종과 수확 후 유통 중 물러짐을 예방하는 전용 용기 개발, 장기보관 방법 등을 고안해 다래 재배 농가 소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또 다래 상품화를 위한 가공사업장과 학교 교육과 연계한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하며 다래의 부가가치향상과 산업화에 힘쓴 점도 높게 평가했다.

그의 토종 다래 연구는 ‘머루랑 다래랑 먹고’라는 매우 익숙한 고려가요 청산별곡 한 구절에서도 찾을 수 있듯 다래는 전국 주요산지에서 생육되고 있으나 정작 우리에겐 잊혀졌던 과일 ‘다래’를 재발견해 한국인의 밥상머리에 놓고 있는 셈이다.

이 대표는 “늦은 나이에 귀농을 결심하고 과수 재배와 산야초 연구에만 매달렸다. 실패와 좌절을 수도 없이 맛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미래농업의 가치를 믿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대한민
국 최고농업기술인 명장이라는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오르게 됐다”며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품종연구를 통해 지역농업 발전을 견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다래’ 혹은 ‘참다래’라고 불리는 키위(kiwi)와는 달리 토종자원인 다래는 전국적인 재배가 가능하고 껍질이 얇고 털이 없어서 키위와 달리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토종다래는 독특한 맛과 향이 있어 주로 생과실로 먹는다. 어린 다래순은 산나물로 먹기도 하며, 줄기에서 나온 수액도 식용 가능하다.

이 대표는 한국 토종식물 보존을 위해 지난 2008년부터 광양시 식물자원화연구회(품목농업인연구회)를 발족시켜 회장을 맡아 90여명의 회원과 함께 토종작물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백운산 야생 다래를 발굴, 재배에 성공한 뒤 키위에 이름을 빼앗긴 참다래와 구분하기 위해 ‘토종다래’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 현재 13여가지 다래 품종 비교 시험포를 조성해 보다 많은 농가에 토종다래 육성을 위해 기술을 보급 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토종다래 중 특히 향과 당도가 높은 리치모닝, 리치선셋, 리치캔들 등 품종개량에 성공해 품종명칭까지 상표 출원한 상태다. 토종다래의 뛰어난 약리 효과가 알려지면서 생소한 과실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수도권 농협뿐만 아니라 현대와 신세계백화점 등 대형 백화점에 납품하는 등 토종다래 대중화의 진로를 개척하고 있다.

현재 부저농원에서 재배되고 있는 매실, 다래와 약용식물 100여종은 물론 350여종의 각종 야생화 등을 이용해 2차 가공식품 생산 판매 중이다. 각종 발효액, 식초 등 제품을 꾸준히 개발, 지금까지 약 30여종의 가공품을 개발·판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홍매실 발효액을 화장품 원료 회사에 납품해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이 대표는 “토종다래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생긴 뒤 전남농업기술원 조윤석 박사 등 전문가를 찾아가 재배방법과 품종연구 등에 방법을 배우는 등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일부 농가는 토종다래 재배에 나섰다가 판로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다들 키위로 품종을 바꿨지만 토종다래 재배와 보관, 가공에 이르기까지 연구를 거듭한 결과 점차 판로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키위보다 약성이 좋다는 분석이 잇따르면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이 대표가 힘을 쏟고 있는 분야는 귀농인 대상 후진 양성과 기술보급이다. 자신이 가진 기술이 널리 보급돼 지역농업의 생산성과 소득을 높이고 후진들의 성공적인 귀농을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귀농 후 최근 10년간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센터, 수많은 교육기관을 통해 받은 교육을 자신의 농업환경에 새롭게 적용하고 보다 뛰어난 재배방법 등을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 결과 이
제는 수강생이 아닌 우수강사로서의 명망을 높이며 후배 농업인들에게 자신의 농법을 가르치고 있다.

또 2014년부터는 공무원교육원과 산림조합연수원, 서울대 남부학술림 등에서 농장경영, 토종다래 재배, 약용식물과 관련한 강의를 진행 중이다. 그의 가공 등 소득분야 다변화와 차별화를 통한 판로확보 방안 역시 지역 농업인에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대표는 “귀농인이나 후배 농업인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어떤 과수에 어떤 토질이 적합한지, 그리고 기후와 풍토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라며 “품종은 물론 땅의 성질과 기후를 알아야 성공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고 당부했다.

또 “시장에 휘둘리기 쉬운 만큼 단일 품종은 피하고 조중만생종 등 다양한 품종을 생산하는 방식이 초기 실패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한 뒤 “특히 과수 소득에는 발효 가공식품 생산체제를 갖추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어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퇴직 후 귀농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분들의 안정적인 귀농정착을 돕고 싶다. 내가 연구하고 경험한 성과가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며 만면에 코스모스 꽃 같은 웃음을 매달았다.

농촌진흥청은 이번에 선정한 농업기술명인에게 명인패와 시상금, 기념손찍기(핸드프린팅) 동판을 수여하며 오는 12월에 농촌진흥청에서 열리는 '농촌진흥사업 종합보고회'에서 시상할 예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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