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9월 첫째 주 광양시민신문에 실린 기고가 백 번째 글이라며 막둥이 딸이 가족 대화방에 올리며 축하를 전해온다. 바쁘다며 늘 엄살이 심했는데 그래도 아버지가 쓰는 글이라 눈여겨 보았는가 보다. 시민신문 외 한겨레신문, 광주일보, 광양신문, 순천시민신문에도 과거 틈틈이 쓴 글이 50여 편 더 있어 아들로부터 책을 내 보자는 건의가 있었다. 읽는 사람은 주는데 책은 넘치는 세상, 나는 오직 읽고 쓰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며 즐기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대로 나는 글을 쓰며 무엇보다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성찰의 시간 외에도 너무나 많은 즐거움의 시간을 가진 것 같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다 보니 밭을 고르다 호미 끝에 받치는 돌덩이처럼 생각의 단상들과 씨름하며 불면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욕심없이 그저 지인과 대화하듯 써보자는 생각 때문에 인지 조정래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대가들도 기일을 정한 글쓰기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지금까지 큰 부담 없이 써온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해 본다.


글감을 찾기 위해 노년의 나태함과 싸우며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신문을 뒤적인다. 살아감에 대한 나와 다른 해석을 눈여겨보고 아침 이슬 머금은 꽃망울 같은것을 보면 전해주고 싶은 삶의 이야기를 찾아본다. 이 나이에 선택과 집중도 모른 채 닥치는 대로 꾸벅꾸벅 읽고 흥미가 있고 호기심이가면 30여 권 이상 준비된 노트에 언제 다시 읽을지 가늠도 안 서지만 적고 또 적기도 한다. 체력의 유지를 위해 매일 한 시간씩 스트레칭하고, 이틀마다 두 시간씩 산행한다. 내 몸과의 내화를 시작으로 세상과 자연과의 대화로 넓혀 나간다. 새싹과 꽃들과 낙엽과 썩어 가는 그루터기와 공간을 지켜 주는 바위와 흐르는 시간까지도 고맙게 받아들이라 충고하는 먼 산위 구름과도 대화를 한다. 철 따라 바뀌는 상큼한 향기와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로 피로감을 널어낸다. 만나는 사람마다 살아가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어 꾸준히 산을 찾는 야무진 걸음에 축복을 보내도 본다. 때론 들어만 주는 것도, 몇 마디거든 것도 배려와 감사하는 마음 주고받으며 보람과 의미라는 감칠맛을 확인한다.


독서와 쓰기는 이 나이에도 가슴 뛰는 경험을 준다. 113살의 최고령에도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스페인 할머니는 장수의 비결을 뭇는 질문에 “나는 그저 살아가는 것 말고는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실존적 삶의 최고의 정의에 무릎을 치기도 했다. 84살의 나이에 『카일라스 가는 길』을 쓴 오지 여행 전문가 이춘숙 할머니로부터 용기를 받고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나려면 불편한 타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헤겔의 말로 생각하는 힘을 넓힌다.


무슨 일이든 고비는 있다. 농사도 퇴비를 주고 부지런히 갈아엎어서 땅심을 높여 이웃 밭보다 탐스러운 작물이 자라고 지천의 풀꽃들과 대화를 트기 전까지는 고된 반복에 피로가 엄습한다. 하루 7시간씩 삼일 반을 오르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도보여행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일당 만 오천원을 받고도 선택되었다는 즐거움을 미소로 연신 표하며 자기 몸보다 큰 짐을 지고 오르는 포터들을 보며 풀리는 다리를 추스를 수 있었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아름다운 산하를 보며 대대로 품어온 선함과 성실이 이끄는 대로 감자와 옥수수와 콩만으로도 고마워하며 해맑은 미소를 보내는 현지인들을 대하며 고산증을 이겨 내기도 했다.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옆에 서로가 같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 축복으로 생각하고 칭찬과 고마워하는 마음을 체화하며 웃음꽃을 피워보자 오늘도 다짐해본다. 성인군자도 못되고 남다른 능력은 없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은 퇴고를 통해 인내와 더 나음을 체험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조금은 지혜로우며 합리적이고 성실한 삶을 꿈꾸어도 본다. 석회동굴의 종유석과 석순이 천장과 바닥에서 억겁의 세월 서로를 향해 손을 뻗듯 글을 쓰며 서투르게 뚜벅거리고 허우적거려도 조금씩 진리와 이치를 향해 나감을 감지하는 즐거움이 있다. 읽고 쓰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내 삶의 다독임은 늦게나마 스스로 만족을 찾는 소박함 속에 노년의 무료를 넘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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