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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해설가 정다임과 함께 걷는 숲길 여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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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26  16: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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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광양 백운산 둘레길 3코스(섬진강 매화 길)
□ 코스 : 하천마을(광양시 다압면 하천리 산5-1)-염창마을-평촌마을-다압면민 광장관동
-소학정-섬진마을(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490-8) / 총 길이 20.3km(약 6~7시간 소요)
□ 가이드팁 : #출발점 갈 때 (시내버스 15번): 옥곡 버스정류장 오전 7시 08분
#트레킹 후 올 때 (시내버스 35-1번): 섬진마을 탑승 후, 신원삼거리 또는
하동 터미널 도착 그곳에서 54번 환승-옥곡 도착
□ 먹거리 : 닭 숯불구이, 섬진강 민물매운탕, 섬진강 참게탕, 재첩회와 재첩국
□ 볼거리 : 섬진강, 청매실농원, 족보 바위, 씰가지 바구, 금천계곡, 쫓비산, 하동송림 등
※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백운산 둘레길' 앱을 다운 받으면 둘레길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서 걸을 수 있습니다.

▲ 정다임 수필가(숲해설가)

백운산 둘레길 3코스는 섬진강을 끼고 전국에서 지역의 길이가 가장 길게 늘어진 다압면의 전 구간을 걷는 길이다. 출발은 하천마을에서 시작된다.

하천마을은 광양시와 구례군의 경계에 있으며 ‘시루봉 골’이라는 곳에 처음 터를 잡아 부자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을 지나던 중이 마을에 물레방아를 놓으면 복이 온다고 하여 물레방아를 놓아 그만 재앙이 들어 지금의 마을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마을 앞에 흐르는 내(川)의 돌이 마치 군데군데 연꽃 모양으로 보여 연꽃 하(荷)자를 써서 하천(荷川)이라 했단다.

하천마을에서 섬진강 자전거길을 따라 약 15분 정도 가다가 둘레길은 염창마을로 들어선다. 염창마을은 고려 시대(918~1392) 때 소금을 보관하고 출납하던 창고가 있었다고 한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염창마을 회관을 지나 매각마을로 가는 길에 커다란 바위 위쪽에 네모난 구멍이 있다. 이곳에 임진왜란 당시 김해김씨의 족보를 숨겨 놓았다 하여 '족보 바위' 또는 '설통 바위'라 부른다. 지금은 족보는 없고 흔적만 남아있다. 매각 마을은 염창마을과 직금마을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섬진강은 아주 오래전에 '두치강'으로 부르다가 모래가 많아 '다사강(多沙江)'으로 불러왔다. 그러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피해갔다는 전설로 ‘두꺼비 섬(蟾)’ 자를 붙여 지금의 ‘섬진강’이라 부른다.

마을 어귀에 '씰가지 바구'라고 적혀 있다. “긍깨 이 바구 밑에 씰가지가 거시기를 놓고 살았는디, 거시기가 삼시롱 만날 밤만 되믄 동네 다클다 물어다 놔서 씰가지 바구라 했어.” (아주 오래전에 이 바위 밑에 삵이 새끼를 낳고 살았는데, 삵이 살면서 매일 밤만 되면 동네 닭을 다 물어다 놓았다 해서 '삵 바위'라 했다.-매각마을 할머니 말씀 중에서….)

매각마을에서 둘레길은 2차선 차도로 내려와 직금마을로 들어간다. 직금(織錦)은 풍수지리설에 옥녀봉에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이라 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마을 앞에 옥녀샘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이 물을 마시고 정성껏 기도하면 아이를 얻는다는 이야기다.

둘레길은 다시 2차선 차도로 내려와 자전거도로를 약 10분 걸어 평촌마을에 도착한다. 평촌마을은 백운산이 자랑하는 4대(봉강·옥룡·어치·금천) 계곡 중 금천계곡 하류에 위치한다. 그곳에는 현재 노인정으로 사용되고 있는 북섬이 있다.

'북섬'은 마을 북쪽에 있는 섬이라 북섬으로 부른다. 북섬 아래에 '감호정'이라는 건물이 있다. 감호정은 매천 황현이 지은 <감호정 중건기>에 의하면 1839년(현종 5년)에 김응란의 조부가 마을의 누추함을 걱정하여 감호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 넓은 백사장을 끼고 강 건너 하동군 화개면 검두마을과 연결된 나루터가 있었다고 한다. 대나무가 많다는 죽천마을을 지나 약 3시간을 걸어서 다압면민 광장(항동)이다.

항동마을은 여러 개의 마을이 있는데 면의 중앙에 위치한다고 하여 ‘한 골’로 불러오다가 한문이 음차 되어 지금은 항동(項洞)이라 한다. 면민광장에서 둘레길은 섬진강 자전거길인 제방길로 이어져 있으나 면 소재지를 통과해도 무방하다.

면 소재지에는 면사무소와 하나로마트, 그리고 농협과 우체국이 있다. 소재지를 빠져나오면 제방 끝 지점에서 둘레길과 합류하여 섬진강을 끼고 걷다가 고사마을을 지난다. 고사(高士)는 선비가 많이 배출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얻은 이름이라 한다.

마을 앞 도로 끝에는 김기두(金琪斗)의 자선 비가 있다. 김기두(金琪斗)는 일제강점기 때 흉년이 들어 밥을 굽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세금을 대납하고 호구마다 쌀 한 말씩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항동에서 약 1시간 20분쯤 걸어 관동마을에 도착한다. 관동마을은 1600년경 경남 진주에 살던 청주정씨(淸州鄭氏) 부부의 꿈에 선친이 나타나서 서쪽을 가리키며 말없이 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괴이하게 생각하여 다음 날, 이삿짐을 꾸려 서쪽으로 정처 없이 길을 걸었는데, 경남 하동에 이르러 강 건너 이곳을 봤더니 기골이 장대한 장군이 손짓을 하여 갔지만 그 장군은 온데간데없고 넓은 터만 있어 정착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관동마을 뒤에는 마치 갈모 형국을 한 갈미봉이 있다. 그래서 아마도 이 마을에 기골이 장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이 탄생한다는 설이 있지 않았을까?

(TIP : 관동마을에서 갈미봉과 쫓비산, 그리고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둘레길은 송정공원을 거쳐 섬진강 제방길을 걷다가 하늘향 카페를 지나면서 우측 논길을 걸으며 소학정으로 이어진다. 소학정은 숲이 좋아서 황새가 많이 살고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용무정 북쪽에 있는 산을 지칭하기도 한다.

용무정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가다가 길은 험하고 밤은 깊어 인가를 찾을 수 없어 밤중에 보이는 큰 바위에 올라 잠을 자는데, 꿈속에 바위 신(神)인 용(龍)이 나와 바위를 스쳐 가면서 용 꼬리로 둑을 무너뜨리고 지나가니 둑이 둥둥 떠내려갔다고 한다.

그러자 용은 선비에게 시험 문제를 가르쳐 주어 과거에 급제했다고 해서 용소 또는 용무정(龍舞亭)이라 했다고 한다.

소학정 주차장에서 둘레길은 쫓비산으로 가는 등산로와 함께 걷다가 약 20분쯤 후에 등산로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약 70여 미터 내려와 다사마을 뒤쪽으로 하여 삼박 재로 올라간다. 다사마을은 본래 이름이 다사천(多沙川)으로 모래와 내(川)가 많은 고을을 의미한다.

삼박 재를 넘어서면 섬진마을 청매실농원이다. 청매실농원이 유명해진 것은 율산 김오천옹 덕이다.

김오천옹은 1902년 11월 21일(음력) 섬진마을 김용순의 아들로 태어나 여덟 살 때부터 머슴살이하여 1918년 열일곱 살 되던 해 머슴살이한 삯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13년 동안 광부 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올 때 “사람은 사람을 속인다. 그러나 흙과 나무는 사람을 속이지 않다”라는 생활신조를 가지고 밤나무 5천주, 매실나무 5천주의 묘목을 가져와 1931년 그가 서른 살 때 현재 이곳을 행인들도 거침없이 알밤을 주워 먹을 수 있는 밤 산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그 당시 밤이 익어 갈 때면 이곳은 온통 밤 산으로 뒤덮였고 그동안 세운 공로로 그는 1965년 ’산업훈장’을 받았다.

명인 홍쌍리 여사는 김오천옹의 며느리로 매화 나무에 불씨를 살려 시아버지로부터 내리받은 개척정신으로 모진 고생을 하여 섬진마을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화골로 만들었다. 매화는 추운 겨울에도 고통을 이겨내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의로운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꽃말이 고결한 마음, 기품, 결백, 인내의 뜻을 품고 있다.

매화꽃에 슬픈 전설을 들으며 백운산 둘레길 3코스는 쫓비산 아래 섬진마을 주차장에 걸음을 세운다.

옛날 깊은 산골에서 그릇을 굽는 젊은 도공이 있었다. 그 도공에게는 청혼한 아름다운 여인이있었는데 혼인 사흘 전에 갑자기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 도공은 정혼녀의 무덤가에서 날마다 슬피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덤가에서 매화나무 한 그루가 돋아나자 도공은 죽은 여인이 매화나무로 환생했다고 생각하고 자기 집으로 옮겨다 심고 꽃을 가꾸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매화꽃이 피고 지기를 여러 해, 그 도공은 죽어서 한 마리 새가 되어 매화나무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새가 '휘파람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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