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선 작가

▲ 정인선 작가

며칠 전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에 조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들어가는데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커브 길로 들어서자 갑자기 자전거가 툭 튀어나와 둘 다 기겁을 했습니다. 자전거 네다섯 대가 줄지어 휙 스쳐 지나가는데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얘들이 안전모도 안 쓰고 역주행 하면 어떡해!”, “자전거는 우측통행 아닌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서 교통 규칙을 기본으로 알아야 하는데!”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러쿵저러쿵 구시렁대는데 슬쩍 부러움이 깃듭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그 상쾌함이 얼마나 시원할지 상상만으로도 찌푸렸던 얼굴이 펴지며 과거로 추억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린 시절, 네 살 위인 작은 오빠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줘서 몇 번 손잡이를 잡아본 적은 있습니다. 다리가 짧아 자전거 안장에 앉아서는 도저히 발이 발판에 닿지 않으니 일어서서 페달을 밟았습니다. 어른 자전거는 페달을 돌리는 게 힘에 부치고 내 어깨보다 넓은 손잡이 잡는 것도 무서워 얼마 안 가 미련 없이 포기했습니다. 자전거를 혼자 타지 못하니 오빠가 앞에 태워주거나 뒷좌석에 태워 길을 내달릴 때면 하늘을 날아갈 듯 신이 났습니다.

여름방학 때면 서울에서 또래인 사촌들과 동생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때마다 찌링찌링 오빠의 자전거는 멋진 차로 변신을 했습니다. 오빠는 듬직한 운전사, 우리는 손님이 됩니다. 처음에는 교통비로 지불할 떡갈나무 이파리를 한 장씩 손에 들고 순서대로 두 사람씩 자전거에 탑승합니다. 한 사람은 손잡이와 안장 사이 프레임에 다리를 모아 걸쳐 앉고 다른 한 사람은 운전사 뒷좌석에 올라탑니다. 제 차례가 돼서 자전거에 올라탔을 땐 타자마자 하차한 것처럼 쏜살같이 달려간 시간이 너무 아쉬워 내려오기가 싫었습니다. 그대로 하늘을 향해서 달나라까지 쭉 내달리면 좋겠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차례를 기다리며 지친 우리는 떡갈나무 이파리를 한 움큼씩 따와 먼저 타려고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지칠 줄 모르던 오빠는 우리의 실랑이를 잠재우려 말썽꾸러기 손님들을 앞에 한 명, 뒷좌석에 두 명이나 태우더니 처음과는 달리 버겁게 운전을 했고 무거워진 자전거는 위태롭게 기어갔습니다. 비로소 제 차례가 되었을 때 뒷좌석 두 번째에 앉았습니다. 자리는 비좁고 쭉 뻗은 다리는 아프고, 발 디딜 곳을 찾다가 그만 자전거 바큇살에 발이 끼여“악”하는 비명과 함께 놀이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뻘겋게 피가 나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발을 다친 아픔과 통증보다 더 놀지 못한 아쉬움에 허탈해했던 자전거 타기는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운 추억입니다.

위로 자라던 키가 더는 크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을 때 그 유쾌한 어린시절의 자전거 타기는 향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는 세상의 눈높이와 달리는 속도감은 자전거를 따를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시야를 안겨 주었습니다.

앞뒤로 나란하지 않고 한 축으로 나란한 두 바퀴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의 그 설렘은 너무나 선명합니다. 의지만 있다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가리지 않고, 어디를 가든지 자기만의 속도로 여유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휠체어는 듬직한 운전사였던 작은 오빠가 없어도 얼마든지 자가운전이 되었습니다. 먼저 타겠다며 기 싸움 벌일 일도 없고 앞다투며 더 많은 차비를 마련하겠다고 떡갈나무 이파리를 한 아름 따올 필요도 없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자가용입니다.

위험천만이었던 라이더들 덕분에 유쾌한 바람 가르며 다녀온 과거로의 여행은 잊고 지냈던 추억을 싱그러운 풀냄새와 함께 활기차게 소생시켜 주었습니다. 속도감에서 훨씬 뒤처지지만 밝은 표정의 라이더처럼 환한 모습으로 두 바퀴 휠체어에 시동을 걸고 온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며 살아갈 활력을 안겨 줍니다.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같은 굴러가는 바퀴를 탔던 그 청소년들에게 “얘들아, 자전거는 우측통행이야!”하고 소리쳐 봅니다. 달리는 즐거움과 스피드보다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이 필수라는 말까지 곁들이다 가 닿을지 모를 외침일랑 거두고 두 손 모아 모든 이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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