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선 작가

▲ 정인선 작가

“이건 너무 크고 저건 뾰족해”, “줘 봐!”

손재주가 있는 친구가 큰 돌멩이를 적당한 크기로 야무지게 다듬어 공깃돌을 만듭니다. 조그맣게 변한 돌들과 새알심만한 크기의 동그란 돌을 주워 모아 땅바닥에 수백 개를 가득 쌓아놓고 쫘악 펼치며 공기놀이를 합니다.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공돌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손톱이 닿아지도록 흙먼지를 일으키며 놀이에 몰두합니다.

“옆에 있는 돌 건드렸어.”

“안 건드렸어!”

“너희들은 봤지? 못 봤어?”

가끔 옥신각신 말다툼해도 금세 마음 풀고는 깔깔거리며 해 저무는 것이 못내 아쉬워 툴툴거립니다. 내일은 뭐 하고 놀 건지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집으로 향합니다. 고무줄놀이 하자는 친구, 숨바꼭질 하자는 친구, 38선 하자는 친구, 저마다 좋아하는 놀이는 달라도 막상 모이면 한마음 한뜻으로 어떤 놀이를 해도 시끌벅적 신났습니다.

저는 몸으로 움직이는 놀이보다는 한 자리에서 펑퍼짐하게 앉아 노는, 많은 공기놀이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그 놀이만큼은 곧잘 하는 편이었습니다. 단둘이만 해도 가능하고 삼삼오오 여럿이 모여 놀 수도 있었기에 몇 명의 친구가 모여야 한다는 제약이 없어 더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처마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 놀 수 있으니 더 좋았습니다. 계절과 장소에도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라 공기놀이는 만만했습니다.

제가 잘하지 못하는 놀이도 친구들과 함께 하면 무엇이든 행복했습니다. 제아무리 잘하는 친구들끼리 편을 먹어도 질 때가 있고, 못하는 친구들끼리 한편이 되어도 감쪽같이 이길 때가 있었습니다. 놀이를 잘하든, 못하든, 이기든, 지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흔들리는 벼 이삭만 봐도 웃음이 나고 코스모스꽃도 장난감이 되던 시절, 그때는 온 세상이 친구였고 놀이였습니다.

‘함께 놀던 옛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하루라도 못 보면 죽을 것처럼 매일 붙어 지냈던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합니다. 한때는 인생의 전부였던 친구들과 언제부터인지 관심이 멀어지고 소홀하게 되었는지 무심한 세월을 짚어보니 슬퍼집니다. 지금은 저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친구들과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으로 안부를 묻습니다.

하는 일이 능숙하지 않아도 어릴 적 그때 우리가 놀이에 열중했던 것처럼 자신의 일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이기거나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 놀이에선 몇 번이나 이기고 졌는지가 무의미했던 것처럼 현재의 승률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 어떤 일이든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깔깔대며 신나게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어린 시절이 그리운 것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한 친구가 보고파서일까요? 마냥 즐겁게 놀았던 순수한 제가 그리워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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