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5일장 <광양빈대떡> 정재식 사장

마흔 살의 도전은 불안하다.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흔 살을 살아낸 삶에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도 하다. 바로 경험이다. 그래서 인생의 진검 승부는 40대부터라는 말이 있다. 더구나 꿈이 있다면 말이다.

겨울 초입에 이르러 제법 기운이 싸늘하던 지난 26일 평소 형님, 동생을 주고받으며 간혹 만나 술잔을 나누는 김종현 광양주조(주)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침 파장 무렵이라 한산해진 장터에 썩 괜찮은 빈대떡집을 발견했는데 “막걸리 한 잔 어떠냐”면서 말이다. 달리 말해 새롭게 막걸리를 납품하는 곳이 생겼다는 뜻인데 이런 유혹이라면 술의 나라 백성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 주는 게 주당의 예법이다.

더구나 빈대떡이라지 않나. 녹두와 돼지고기 등을 주재료로 만드는 빈대떡은 기름에 바싹하게 구워 노릇노릇한 색깔과 고소한 냄새가 아주 매력적인 음식이다. 바삭한 식감과 기름진 풍미는 충분히 유혹적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

노점상들이 철수를 시작한 시간쯤 부랴부랴 도착했을 땐 김종현 사장은 이미 막걸리잔을 연신 기울이는 중이다. 광양오일장 터줏대감 김제원 상인회장과 무슨 정담이 오가는지 사람이 들어서는지도 모른다.

▲ 광양5일장 <광양빈대떡> 정재식 사장

그렇게 술상에 잔이 더해지고 “코로나19 때문에 걱정”이라는 김제원 회장의 한숨이 깊어갈 무렵 이윽고 노릇노릇 잘 튀겨진 녹두 빈대떡과 부추새우전이 나왔다. 그런데 녹두빈대떡이 좀 이상하다. 돼지고기를 갉아 만든 여느 빈대떡과는 달리 돼지고기를 잘 게 저민 게 눈에 띄었던 탓이다.

“보통 빈대떡엔 돼지고기를 갉아서 만드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오늘은 돼지고기의 식감을 살려보려고 얇게 썰어서 만들어봤어요” 물음에 되돌아온 젊은 주인장의 말은 이랬다.

광양오일장에 새롭게 둥지를 튼 <광양빈대떡>은 정재식(41) 사장이 새롭게 문을 연 점포 이름이다. 바로 이곳에서 마흔을 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정재석 사장의 고소한 꿈이 바삭바삭 튀겨지는 중이다. 광양빈대떡이라는 버젓한 간판을 달고 가게 문을 연 지 이에 다섯 달여 남짓이다.

사실 그는 십수 년 동안 자동차 서비스를 담당해온 숙달된 엔지니어다. 자동차 곳곳을 만지며 수리하는 게 일상인 엔지니어가 왜 빈대떡 가게 사장님이 된 것일까. 돌아온 답 역시 간단했다.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저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며 “무엇보다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족과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요리를 하면서 스스로 행복해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게 중에도 하필 빈대떡에 꽂혔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빈대떡에 익숙했던 그는 전국 각지 빈대떡 맛집에서 눈총을 받아가며 전해 들은 요리법을 집에서 직접 만들고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다른 음식을 호평하던 것과는 달리 빈대떡에 대한 평가는 유난히 박했다.

익히 빈대떡이라는 음식을 다들 알고 있었으나 사실 빈대떡은 전라도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닌 데다 “실제 맛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가 웃었다.

밀가루를 이용한 부침 음식을 주로 먹는 전라도의 특성상 녹두를 갉아 여러 재료를 섞은 뒤 튀기는 방식의 빈대떡 맛이 생소할 터이기도 했을 테지만 아직 제대로 된 빈대떡을 만들어내지 못한 자신의 탓이었다는 게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서울과 경기도, 대전, 부산 등 빈대떡이 유명하다는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다. 빈대떡 맛집으로 소문 난 곳이라면 마다치 않고 찾아갔다. 배우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유난스럽다”며 눈치 빠른 아내가 불안한 듯 핀잔을 주기도 했다.

고집 때문에 시작한 일이 어느새 2년이 훌쩍 지났다.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던 주변 반응도 시간이 갈수록 칭찬이 이어졌다. 그가 내놓은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차츰 길어졌다.

내친김에 지난해부터 장이 서지 않는 노점을 이용해 판이 펼쳐지는 광양오일장 프리마켓(야시장)에 장사를 시작했다. 사실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자신이 내놓은 음식에 대한 반응을 어떨지 궁금했다. 그렇게 시작한 빈대떡 장사가 1년 넘게 이어졌고 아예 어엿한 점포까지 열게 됐으니 보통 고집은 아닌 셈이다.

물론 창업은 쉽지 않았다. 우선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생계가 우려스러웠던 까닭이다. 그 역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생업인 자동차 서비스 일을 계속하되 장이 서는 날만 영업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정 사장은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장날 이곳에서 일하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며 “상인들 역시 젊은 사람이 전통시장에서 장사하겠다고 나선 게 기특하다, 성실하다 많이 챙겨주신다. 이런 게 사람 사는 맛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어 “점포를 연지 6개월 정도 지났는데 단골손님도 생겨서 포장을 많이 해가신다. 뻔한 말일지 모르겠으나 항상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며 “사실 새로 개발 중인 메뉴는 모두 가족들이 시식평가단인데 무척 냉정해 가끔 상처받는다”고 웃었다.
그는 “현재 다섯 개 메뉴가 나와 있을 뿐이나 보다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나갈 생각”이라며 “음식 갖고 장난치지 않겠다는 처음 마음으로,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항상 정성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