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90이 넘은 노년까지 늦둥이 막내에게 의지하는 삶이 미안하다고 생각해서일까. 담배 피우는 것도 자식이 좋아하면 말리지 못하시던 어머니셨다. 늘 상 웃음 띤 침묵이 동의로 생각하고 건강에 좋다며 잡곡밥을 한결같이 지어드렸는데, 아버지의 기일에 쌀밥을 드시며 “쌀밥을 먹으니 참 좋구나” 하시는 것이 아닌가. 치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자식 뜻에 따라 산 어머니의 살아생전 조용함에 대한 오해들이 지금도 내 가슴에 대못으로 박혀있다.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한 집사람이 고추장을 담근다며 나흘째 법석을 떨고 있다. 조금은 집중력이 떨어져 한 번에 도움을 요청하면 좋으련만, 열 근의 고추를 사서 빻고, 그중 다섯 근을 주재료로, 엿기름을 사오라 메줏가루를 사와라, 매실청을 내오라며 책을 읽는 나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제낀다. 슬며시 짜증이 나려는데 집사람 말에 눈이 촉촉이 젓는다. “당신이 유독 산 고추장보다 내가 담은 고추장을 좋아해 한번 담아보려니까 전에는 손대중으로 모두 하였는데 가남이 안 서 유튜브를 보며 일일이 양을 맞추다 보니 어렵네요”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당신의 그 표시 안 나는 나에 대한 배려를 조금은 눈여겨보지 못한 아쉬움이 쓰리다.

나는 요즘 친구들과 식사 나들이 에서나 시립 도서관 교육에서 “청바지 아저씨 멋있어 보여요”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침마다 한 시간여 스트레칭하고 이틀에 한 번씩 산행하는 등 자기관리에 최선을 다한 스스로의 노력 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니 내 가족 중 누군가에게 어려움이나 불행이 닥쳤다면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잊고 산 자식들에 대한 고마움에 코끝이 시큰하다.

농사를 지으며 퇴비를 충분히 주고 깊이 갈아 정성껏 기르면 질이 좋은 농산물이 생산됨을 확인하며, 자식들도 최선을 다해 보살피면 더 훌륭한 자식들이 되었을까 하는 미안한 자책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다. 어릴 적 공부가 소원이었던 나는 당연히 공부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자식들을 학원에 보낸 사실이 없다. 알량한 직장에 대한 책임감으로 자식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담임선생을 만나 상담해 본적 또한 없다. 형님이 2남2녀의 조카들을 남기고 돌아가시고 형수님이 가출한 탓으로 막둥이지만 가정을 총책임지는 입장에서 노부모님 앞에서 똑같은 손자들인데 1남1녀의 내 자식들을 차별하여 칭찬하고 어여쁘다 티 낼 수가 차마 없었고, 조카들에 대한 측은함이 항시 앞을 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착해빠진 자식들을 칭찬하고 쓰다듬어주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있다.

대학을 다니러 상경한 자식들을 만나본 큰 회사 중역인 손아래 동서가 자식들을 어떻게 길렀기에 온실에서 자란 것 같이 너무 순박해 서울 생활이 걱정이 된다며 우려의 전화가 왔다. 선하고 정직하고 성실이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늘 하였으나 자식들의 눈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에 자신이 없어 차마 말은 못 했는데 별 탈 없이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처럼 각자의 길을 걸어가 주었다. 방학 때면 내 호출에 불평 없이 응해 1박 2일의 지리산 종주를 매년 다녀도 왔다. 세 놈을 앞장세우고 집사람과 뒤에서 지켜보며 걸어갈 때의 즐거움은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총각 샘•선비 샘의 물을 마시며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부나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자가 아니라 가장 갈증이 심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늦여름의 노루목과 장터목, 세석평전의 들꽃보다 더 예뻤던 우리 자식들. 갑작스러운 무리한 산행으로 지하철역을 어렵게 오르내려도 내색 한번 없었고 그 사실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칠십 하고도 둘이 되니 자식들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깊어만 간다. 농사를 짓는 다 한동안 세상일 잊고 살아도, 경로우대의 나이에 대학을 다시 다닌다며 호들갑을 떨어도, 칠순기념으로 히말라야를 다녀와도, 우려의 눈빛 외, 항시 내 뜻을 존중해준 자식들이다. 금상첨화랄까 내 이성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사건은 네 손주 녀석들의 탄생이었다. 손주 안 예뻐하는 할아버지가 있을까마는 이놈들은 진화의 극치이며 부모님 음덕의 결과라 확신했다. 주책없이 차를 사겠다, 점심을 사겠다며 손주를 자랑하는 나에게 할아버지 닮아 눈에 총기가 있어 보인다거나, 식사 안 해도 배부르겠다는 말을 나는 한번 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들과 딸에게 설혹 부부생활에 서운한 대목이 있어도 두 형제를 낳았다는 축복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 라 늘 타이른다.

네놈들이 들어닥치면 우리 집은 전쟁터로 돌변한다. 그래도 네놈들을 데리고 뒷산을 오르면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칭찬에 나는 손주들과 또래가 된다. 손주 넷과의 산행은 내가 유일한 것도 같다. 오늘도 이놈들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나는 삶을 축복하고 생을 긍정하며, 더 이상의 욕심은 버리고, 선하고 정직하며 성실히 살아가겠노라 하늘을 우러러 다짐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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