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요즘 들어 나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일거리가 하나 생겼다.

아침마다 딸 아이를 시내에 있는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일이 그것이다. 비록 집사람과 분담해서 하는 일이지만 산촌에 사는 사람이 매일 아침 번잡한 도시를 만난다는 것은 낯선 사람에게 청을 구하듯 조금은 부담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살다 보니 세상은 가끔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요구를 하며 새로운 변화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듯하다.

오랫동안 살았던 도시를 탈출하듯 떠나올 때 네 살이었던 딸아이가 벌써 고1이 되었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나는 그만큼 늙은 셈이다.

성장과 늙어감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길을 부지런히 가는 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무슨 끌림이 있었던 것인지 딸은 커가면서 예술고등학교를 원했고 지금은 책상 앞에 머물기보다는 전공인 트럼본을 열심히 불어댄다. 한동안 새로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친구들과 학교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더니 점차 생겨나는 여러 불편함 때문에 결국 집에서 통학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 시간에 쫓기며 자동차를 몰고 도심으로 나가는 일은 느긋했던 산촌의 나의 일상을 바꾸어놓았다. 나무들이 우거진 산을 바라보던 나의 눈에는 매일 매일 차가워지고 마음에서 멀어져가는 듯한 도시의 풍경이 크게 들어오곤 한다.

칭덕아파트로 접어드는 길옆으로 넓은 동뜰이 펼쳐있었던 자리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세워지고 있다. 어수선한 공사 현장 주변을 수시로 오가는 차량들과 울리는 기계음 소리로 읍내가 분주하다.

넓은 뜰에서 대대손손 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사라지고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근원을 알 수 없는 낯선 마을이 생겨날 것이다.

구석구석 옛이야기들이 살아 숨을 쉬던 읍내의 질박한 풍경도 점차 지워지고 말 것이다.

출근 차량으로 도로가 가득한 중마동 지역은 이제 여느 큰 도시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밀집된 아파트들이 답답한 도시 특유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주위의 시선을 끌기 위해 크기와 색깔을 달리하며 얼굴을 내미는 간판들과 상가와 식당 등, 문명이 데려온 온갖 형태의 삶들이 작은 도시를 속속들이 채우고 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문명사회란 갈수록 우리에게 예전보다 더 큰 걱정거리를 안기어주는 듯하다.

바쁘게 길을 나섰던 처음과는 달리 학교 앞에 딸을 내려두고 돌아오는 길은 걱정 하나를 덜어낸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특별히 서두를 필요가 없어지고 당장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높은 건물들이 도시의 중심인 양 한데 모여있는 낮설은 풍경은 나의 관심에서 점차 희미해지고 대신 돌아가는 길 너머에 있는 산들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자 평소 눈길이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시선이 펼쳐진다.

다시 읍내를 거쳐 낮은 언덕을 오르면 노송들이 한가롭게 우거진 사이로 백운 호수가 시원하게 드러난다. 호수는 때때로 넓은 품을 열고 겨울을 나고있는 새들을 받아들이며 겨울임에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읍내에서 멀어질수록 산은 겹겹이 서로를 에워싸며 그들만의 탄탄한 세계를 지켜간다. 나는 산속에 살면서도 습관처럼 먼 산을 무심히 바라보곤 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평소 힘겹다고 생각하던 일들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산이란 언제나 내가 기대고 싶은 곳이고 때때로 내게 위로를 건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제부터 시작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높은 형제봉의 긴 허리가 흉물스럽게 끊어져 있고 지금도 여전히 파헤쳐지고 있다. 비탈에 패인 붉은 흙 자국은 멀리서도 선연히 드러나고 지금도 굉음을 내며 산 중턱을 깎아내리는 포크레인의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치는 않지만 소방도로를 낸다는 명목으로 멀쩡한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나무들이 베어지고 암반이 깨어지는 소리가 문명에 저항하는 산의 울음인 듯해서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다. 깊은 산의 주인이었던 나무며 바위들이 파헤쳐지면서 오랜 세월을 간직해온 산의 신비도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

내가 처음 이곳 마을을 만났을 때 가장 나를 끌어당긴 것은 대도시에 사라지고 없었던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시에 살면서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으나 가질 수 없었던 것들, 항상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이 모두 다 마을에 있었다. 그 중심에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있었다. 내가 도시를 피해 산촌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딱 성불사까지 걷는 길은 내가 기억하는 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다. 길의 양쪽에 높이 서 있는 고목들이 내민 가지와 잎들이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했고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저마다 춤추듯 휘청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나무들로 인해 길은 좁지만 매우 호젓해서 그 길에 접어들면 하늘로 날아갈 듯한 감동이 일었다. 그러나 길을 넓히면서 하늘을 덮었던 나무들은 베어지고 아름답던 길은 자취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처럼 오랫동안 남아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리서 웅장한 형제봉을 바라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벅차오르는 행복감에 마음이 들뜨곤 했다. 그랬던 산인데 산허리가 잘리어 지니 산의 본래의 모습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린 듯하다. 과연 우리 인간에게 자연을 함부로 파괴해도 된다는 권리라도 있는 것일까? 이렇게 큰일을 저질러놓고 앞으로 들이닥칠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인가?

세월이 흐를수록 도시는 과거를 지워내며 더 삭막해지고 자연이 파괴되는 속도는 빨라진다. 그 모든 후유증은 고스란히 우리의 불안한 삶으로 전이되고 있다.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고 폭염과 폭설,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갈수록 지구가 뜨거워지는…….

아아! 그런 속에서 이어가는 우리의 삶이란 또 얼마나 덧없고 구차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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