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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사색이 가치 있는 미래를 만든다서연우 광양 중학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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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10  19: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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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우 광양 중학교 1학년

토마스 아퀴나스는 “나는 불사 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사물의 본질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란 말을 하 였다.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게 뭔지 아는 것과 우리가 실제로 100점을 맞는 것이 다른 것처럼 존재와 본질은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전 철학자들과 달리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물의 본질’이 아닌 ‘존재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이런 생각은 ‘존재의 형이상학’이라 불리게 되었다. 불사조를 생각한다고 불사조가 생기는 것처럼, 본질이 존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그렇다면 모든 존재의 원인은 바로 신이야. 신은 원인이 필요치 않은 존재지. 스스로 존재하면서 다른 모든 존재의 원인이 되는 거야.”라고 설명하였다.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종교의 신을 설명한 것이다. 이처럼 철학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중요한 학문이다.

플라톤은 철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갖가지 비유를 잘 들기로 유명했다. ‘동굴의 비유’ 또한 그의 많은 비유중 하나이다. 동굴 안쪽에는 죄 수들이 있고 뒤쪽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다. 그러나 머리까지 쇠사슬로 묶인 죄수들은 고개를 돌리지 못해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들은 그림자가 왜 생기는지 알지 못하고 그것이 실제 세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느 날 죄수는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밝은 햇빛 아래에서 그는 눈을 뜰 수가 없었지만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그의 눈은 차츰 햇빛에 익숙해졌다. 그때서야 태양을 비추는 밝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림자를 실제 세상이라 믿고 살아온 죄수에겐 혼란스러웠겠지만 태양이 존재하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그 죄수가 동굴 안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말해 준다면 죄수들은 믿지 않고 그를 바보 취급하며 무시할 것이다. 플라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일, 그리고 그 진리를 보다 많은 사람이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일. 그것이 철학자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오랜 친구들이 주는 축복 중의 하나는 당신이 그들과 함께일 때 바보짓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미국 철학자 에머슨)

‘친구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친구들에게 베풀어라’(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 두 글귀는 두 철학자가 친구관계에 대해 남긴 말이다. 하나는 친구와의 좋은 점이고, 또 하나는 친구에게 해 주어야 하는 행동에 대한 말이다. 두 글귀는 이해가 되다가도 되지 않는다. 에머슨은 친구들이 주는 축복 중의 하나가 그들과 함께일 때 바보짓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오래되고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친한 친구 사이라서 더욱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반대로 베풀라고 하였다. 친구 사이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또 내가 해 주었다고 해서 서로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할 수 없다는 플라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이데아를 설명한다.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기’를 하며 어떤 사상이 독단으로 굳어 버리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이를 통해 이전의 철학이 사고하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고, 이전의 철학이 닫아버린 사고의 공간을 열어젖힌다. 따라서 철학자들의 의심과 질문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새로운 것을 사고하게 하는 생산적인 실천이다. 철학이란 이처럼 자명한 것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고 당연시된 세계를 괄호 속에 묶어 놓고 질문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철학자들의 의심하기는 이제까지의 생각과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뜻한다. 정해진 길로만 간다면 그 이상의 발전이나 찬도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의심하기’란 꼭 필요하다.

철학자들은 늘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시대의 상황과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질문하며 답을 찾기 위해 고심해 왔다. 또한 자신이 누군지, 인간은 다른 대상과 어떻게 다른지 등을 탐구해 왔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대도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미래 인공지능 시대에는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세분화 된 미래는 철학으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해질 수 있다. 무의식중에 갖가지 정보에 노출되고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개개인의 정체성은 찾아볼 수도 없는 사회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철학은 옛 시대의 한물간 학문이 아니다. 예로부터 여러 학문의 기초가 되었던 그러한 철학의 영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일상이지만 주변과 자신을 돌아보고 사색하며 사유 할 때 독창적이며 조금은 다르게 보는 시선을 지닐 수 있다. 무한히 쏟아질 미래는 자율 주행 자동차, 무인 주문 시스템, 사물인터넷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이용한 로봇들이 등장하여 인류의 삶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유도한다. 최첨단으로 발달된 세상에서 우리는 그저 풍족하게 즐기며 살기만 하면 될까? 철학적인 사유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을 세상이다. 빛의 속도로 좇아가는 삶보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자신과 주변 사회를 성찰해보는 철학이 더욱 발전해야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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