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집사람은 평소 내가 주차 운이 참 좋다 자주 말하고, 타고난 농사꾼이라고 믿는 눈치다. 농사야 일기예보에 관심을 두고 살펴본 뒤 비 오기 전에 고추 모를 옮기고, 비가 그친다면 농약을 살포하면 되는데, 주차 운은 집사람의 사랑이 쌓여 믿음으로 굳어진 것 같다. 그 뒤 내가 운전하면 주행 신호가 이어진다는 말까지 이어졌다. 여하튼 ‘집사람의 자주 쓰는 운이 좋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같이 살아오면서 내 삶에 긍정과 즐거움을 주고 우연과 요행까지도 행운으로 해석하는 힘이 생겨 난 것 같다. 심지어는 착하고 정직하고 성실히 살겠다는 나의 다짐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음복이 발복한 것이라 때론 믿기도 한다. 자식들도 표면적으로는 웃음으로 동의를 해주는 처지이고 보니 나는 더 힘이 나고 매사에 긍정적이다.

오늘도 비 올 확률이 60%라 예고하는 데도 우산 없이 산에 오른다. 노인네 산행이 걱정 되었는지, 비는 숨 고르기를 해주고, 낙엽은 허리 굽혀 등 내밀며 밟고 편히 가란다. 떨어진 솔잎은 파인 곳을 메워주며 조심히 가라 하고, 가녀린 고비는 손 흔들며 내일 또 보자 인사하는데, 붉은 단풍은 생각 너무 깊게 하지 말고 앞길 잘 살펴 가라며 걱정까지 해준다.

낙엽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연지곤지보다 고운 잎눈으로 세상에 선보이더니, 따스한 햇볕, 간지러운 산들바람, 반가운 빗방울에 고마움으로 푸르름, 살찌워 감사함이 사랑 되어 얼굴 붉히더니, 마침내 희생까지 배웠나, 미련 없이 떨어지는 저승고함이어. 밟히고 쓸리어간들 이미 너는 저 높은 하늘의 속삭임을 들은 지 오래인 것을.

나의 시선을 의식했나, 옻 잎이 가장 곱게 얼굴을 붉힌다. 아∽아 손으로 만지니 파르르 떤다. 너를 잊고 어찌 하산하라고. 사람들이 너를 멀리하는 것이 너 죄가 아니듯, 사람 그리워함이 어찌 너뿐이더냐.

참 희한한 일이다. 퇴직한 후 15년 이상 산을 줄기고, 두 여름을 보내며 이틀 간격으로 산행을 하는데, 비 사이를 피해 다니듯 비를 수북이 맞은 경험이 없다. 이것도 요행이고 우연이라면 행운일까. 비가 예고된 때문인지 둘레길 한 시간을 걸어도 오늘따라 인적이 없다. 항시 지나치며 인사를 하던 나이 지긋한 두 할머니도 보이지 않고, 좋은 산에 와서도 그저 휴대폰을 잊지 못하고 산행 내내 통화를 하는 중년 부인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 세분 남자 세분 나이들이 지긋해도 군대 행진하듯 힘차게 지나가던 분들도, 뇌경색을 알았다며 예쁜 강아지를 앞세우고 지나가던 젊은 친구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자유시간’ 아몬드 초코바를 호주머니에 세 개 넣고 왔는데 어린 학생들 역시 보이지 않는다.

한참 걸으니 생강나무가 인사를 한다. 발 딛고 서 있는 땅도 다르고, 얼굴 보며 살아가는 이웃까지 달라도, 푸른 하늘 속에 그리고 산 얼굴을 하나 품었는지 어찌 잎 색과 냄새가 밭에서 자라는 생강을 닮았을까. 산들바람에라도 너의 애잔한 마음 실어 보내 보려무나.

누구는 “고독한 겨울을 나려면 화려한 가을을 마음속에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을이 겨울보다 화려하다는 말이 나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 사계절 산행을 하면서 아름답고 신비함에 계절의 차이를 나는 느껴 보지 못했다. 문제는 얼마나 자세히 보고, 얼마나 자주 보고, 얼마나 사랑으로 다가가느냐가 아닐까. 도화지 위 크레파스 색이 아니라 자연 속 사물이 품은 색은 그 오묘함이 가슴 떨리도록 신비하기만 하다. 삶의 고달픈 상당 부분이 말이 통하지 않거나 우김질 때문이라면 자연은 눈여겨봐 주고 아껴줌을 이야기하지 자기의 개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요즘 책이나 신문을 보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산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산은 버킷리스트로 일생에 꼭 한번 가 봐야 할 산은 드물지만, 산이 높고 위험하거나 끝없는 평야만 있는 외국과 달리 시내버스로도 산 아래 도착하고, 심지어 집 뒤에 산이 있어 특별한 복장이 아니라도 쉽게 산을 오를 수 있음이 특이하단다. 여기에 등산로가 험하지 않고 잘 정비되어있으며 위험한 동식물도 없어 정신적•신체적 치유 기능이 뛰어난 산행을 특별한 결심이 아닌 일상으로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부럽단다.

니체건 괴테건 방황과 고뇌의 삶의 끝에서 자기를 인식하고, 성찰하고, 오롯이 자기가 되는 실존적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연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의존하며 공생하는 지혜와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무료와 근심은 인간의 능력과 희망을 파게 하는 무서운 적이다. 요행과 우연도, 이를 행운으로 해석하는 힘도 실천과 꾸준함의 뒤에 따라온다. 돈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행복을 찾는 소박함이 진정한 용기이며 삶을 사는 지혜가 아닐까. 하산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날아갈 듯 가볍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