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진 순천효천 고등학교 2학년

2020년은 우한 발 코로나19사태로 전 세계가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다행히도 한국은 미국, 중국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발 빠른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코로나가 장기화됨에 따라 자영업자들이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지인은 전년도 동기 매출에 비해 수익이 3분 1가량이 줄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코로나는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바꿔놓았다. 그중에서도 고등학생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은 수능 연기였다. 어떻게 보면 초, 중, 고 12년 노력의 결실이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고 볼 수 있는 수능을 연기할 정도로 코로나사태가 심각했다는 반증이었다.

수능 기사 외 소위 입시 전쟁과 관련된 내용이 눈에 띄었는데 연관 기사 제목이 ‘고교 학점제’였다.

고교 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2020년 마이스터고에 우선 도입된 뒤 점차 특성화고·일반고 등에 학점제 제도를 부분 도입하고, 2025년에는 전체 고교에 전면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할 수 있다.

본 제도와 현행 고교 교육과정의 가장 큰 차이는 졸업 자격에 있다. 현재 고등학생은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듣기만 하면, 학교에 등교해서 출석수업만 하면 졸업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성취 수준이 목표치에 충분히 도달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과목 이수를 인정한다. 따라서 기존의 출석 일수로 졸업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에서 누적된 과목 이수 학점에 따라 졸업 가능여부가 달라진다.

학생들의 수업 환경도 많이 변모할 것이다. 모교를 비롯한 대다수의 학교는 음악, 미술 등 과목 특성상 일반 교실에서 진행할 수 없는 수업에 한 해 특별실에서 진행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게 과목을 선택 수강한다면 마치 대학교처럼 선생님들은 수강실에 계시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찾아가는 수업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같이 학생이 자신이 수강할 과목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자기 주도형 학습은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고취시킬 수 있다.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나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을 통해 선택과목을 운영해 본 교사들은 하나같이 ‘학생들의 눈빛부터가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래도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수업을 듣는 것보다 진로, 흥미, 적성, 소질에 따라 강좌를 수강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는 향상되며 수업진행을 하시는 선생님들도 열성적인 제자들과 함께 하니 알찬 시간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된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우선 대학 입시 제도에는 고교학점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일반계 고등학생에게 고등학교는 자신이 원하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중간 지점이다. 좋은 대학은 우수한 학생이 입학하기를 희망하지만 고교학점제의 핵심 시스템인 절대 평가는 대학이 학생을 제대로 평가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현 교육 정책은 조국 딸의 논문 무임승차 의혹, 무시험 대학 입학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을 축소하고 정시를 대폭 늘리고 있다. 이런 시류 속에서 학종과 맥을 같이 하는 고교학점제는 수험생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혼란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고교학점제가 그 취지에 부합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비슷한 예로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중학교에서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동안 지식·경쟁 중심에서 벗어나 학생 참여형 수업을 실시하고 다양한 체험 활동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본래 취지와 다르게, 학생들에게는 자유학기제가 단순히 시험을 보지 않고 마음대로 게임하고 놀 수 있는 시기로 인식되어 있다.

현 시스템도 중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한 발 나아가 학생들에게서 치열한 입시 전쟁을 견뎌낼 힘을 감소시킬 수 있다. 만약 고교학점제가 시행되어서 학생평가가 절대평가로 모두 치환된다면 앞선 사례처럼 학생들의 학습 동기가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순차적으로 학생들의 지적 능력도 저하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지역 간 교육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행 교육 시스템이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학생들을 교과 성적에 따라 서열화하고 그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대우하는 문제, 적성보다는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선택하는 문제, 앞선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자살하는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양산되고 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고교학점제보다 대학입시제도, 더 나아가 학벌주의 사회를 바꾸는 것이 선행될 때 고교학점제는 실효를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을 바꾸는 정치인들도 문제이다. 옛말에 따르면 교육은 백년대계여야 한다. 앞으로의 100년을 보고 계획하고 계획한 후에는 100년 동안 그 계획을 쉽게 변경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할 때마다 교육 정책이 변화하다 보니 애당초 계획했던 성취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고교학점제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또한 고교학점제가 단순히 현 정권의 토사구팽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가 실효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기관에 교육정책 결정에 대한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대학에서도 정책의 취지에 맞게 입시 제도를 점진적으로 변모시킬 필요가 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약속이행의 대상이 책무를 다하는 사회인으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올빼미는 양안시야가 넓어 물체의 거리를 정확히 잴 수 있고 사냥하기에 유리하다. 사람도 올빼미처럼 두 눈이 앞에 있어 양안시야가 넓은 만큼 백년대계의 교육실현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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