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사지 주차장(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옥룡사지동백림)- 서울대 남부 학술림–
중흥산성– 도솔마을- 계룡마을-신촌마을- 하조마을(15.7km: 약 7시간 소요)

□ 광양 백운산 둘레길 7코스(중흥사 토성 길)
□ 코스: 옥룡사지 주차장(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옥룡사지동백림)- 서울대 남부 학술림– 중흥산성– 도솔마을- 계룡마을-신촌마을- 하조마을(15.7km: 약 7시간 소요)
□ 가이드 팁
♥ 옥룡사지 주차장으로 가는 버스 타는 곳: 광양읍 목성아파트 버스정류장(시내버스 21번)-평일: 오전 06:30, 08:00, 11:20, 16:00, 17:30. 휴일: 06:30, 08:10, 11:20, 14:20
♥ 트레킹 후 광양읍으로 가는 버스 타는 곳: 하조마을 종점(시내버스 20번)-평일: 06:00, 07:30, 08:20, 09:00, 10:50, 12:50, 13:50, 14:50, 15:50, 16:50, 17:50, 18:50, 19:50, 20:50. 휴일: 06:00, 07:40, 09:20, 11:20, 13:30, 14:10, 15:10, 16:50, 19:00, 21:00.
□ 먹거리: 닭 숯불구이, 손두부, 꿩탕 등
□ 볼거리: 옥룡사지동백림, 옥룡∙봉강 계곡, 형제 의병장, 중흥사, 중흥산성, 성불사, 부저농원, 산달뱅이 마을, 해달별 천문대 등

백운산 둘레길 7코스 출발점은 옥룡사지 주차장이다. 이곳은 1코스와 7코스의 출발점이며 6코스 도착점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보라색 이정표를 따라 7코스는 6코스와 같이 2차선 차도를 따라가다가 도선교에서 왼쪽 길로 샛돔 마을 앞 추동교에서 6코스는 왼쪽으로, 7코스는 오른쪽 추동교를 건너 보건소 앞에서 다시 2차선 도로를 만난다.

2차선 도롯가에는 ‘고산 윤선도 마지막 유배지’라는 표지석이 있다. ‘고산 윤선도’는 조선 중기 때 시조 작가였다. 하지만 당파싸움에서 밀려 여러 번 유배를 당하고 1665년 그의 나이 이른 아홉 살 때 이 마을로 귀양을 왔다가 2년 4개월 동안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도로에서 둘레길은 좌측으로 서울대 남부 학술림 입구까지 가서 학술림으로 들어가 왼쪽 쇠사슬 쪽으로 진입해 천천히 약 50분 정도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이정표가 중흥산성을 넘게 한다. 산성 길에는 광양 사투리로 ‘쉬어가랑깨’ 푯말이 나무에 붙어 있고 임도를 만나는 곳에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중흥사를 보고 가려면 왼쪽으로, 둘레길만 걸으려면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중흥사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었으나 화재로 폐사된 후, 작은 암자가 건립되어 여승의 힘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1936년 중건하였으나 다시 폐사되었다. 그리고 1963년 독지가 하태호에 의해 재 중건되어 오늘날의 규모를 갖추었다.

한편, 중흥사에는 국보 103호인 쌍사자석등과 3층 석탑(보물 제112호), 석조지장 보살 반가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 등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호국사찰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국보 103호인 쌍사자석등은 현재 광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로 이곳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중흥사에서 다시 둘레길로 이어 가려면 저수지 위쪽에 편백 나무 사잇길로 10여 분 올라가면 된다. (팁: 중흥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성길은 중흥사 입구 세심정에서 출발하여 다시 중흥사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로 소나무 숲길이다. 거리는 약 4km 정도로 한나절 산책 코스로 딱이다.)

편백숲에서 이정표를 만난 둘레길은 앱에서 들려주는 중흥사의 설명을 들으며 약 30분 정도 가다가 산성길과 합류하는 곳에 있는 쉼터를 지나 계속해서 부저농원 앞까지 이어간다. 부저농원 앞 큰길은 사거리 갈림길이다. 오른쪽 도로를 넘어가면 옥룡면 양산마을(도선국사 테마마을)이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봉강면 저곡마을이다.

저곡마을을 옛날에는 닥실이라 했단다. 그 이유는 닥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저곡마을로 가는 길 왼쪽 화전봉 능선 중턱에는 ‘신재 최산두 선생의 묘역’이 있다.

최산두 선생은 성종 13년(1482년)에 그의 어머니가 북두칠성의 정기가 백운산에서 내린 꿈을 꾸고 태어나 산(山)은 백운산의 정기를, 두(斗)는 북두칠성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뜻한다 해서 지은 이름이란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나 8살 때부터 시를 짓고 22세 되던 1504년에 진사에 올라 홍문관을, 1513년 서른한 살 되든 2월에는 별시 문과에 급제를, 그리고 덕행과 빼어난 문장이 빛나 나중에는 호당까지 올랐는데 37세 되던 기묘년(1519년)에 그만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화순 동복에 유배되었다. 그 후, 1533년 귀양살이 15년 만에 자유 몸이 되었지만, 부친과 모친을 잃고 선생도 1536년 5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死後) 선생의 위패가 광양읍 우산리 있는 봉양 사에 모셔져 있고 화순군 동복에도 도원서원(道源書院)이 세워져 사액(賜額]되었다.

둘레길은 사거리 갈림길에서 찻길을 건너 포장도로를 따라 새로 조성된 도솔마을로 이어진다. 그리고 도솔마을을 지나 병풍산 중턱에 있는 임도를 약 1시간 정도 걸어가며 숲이 들려주는 겨울눈 이야기를 귀에 담는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종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겨울눈이라 한다. 겨울눈은 대개 여름이 오면 만들기 시작하며 식물에 따라 겨울눈으로 겨울을 보내는 식물이 있고, 잎과 뿌리로 겨울을 보내는 식물이 있다. 겨울눈으로 보내는 식물의 겨울눈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앙상한 가지에 잎이 나오면 ‘잎눈’, 꽃이 피면 ‘꽃눈’, 가지가 나오면 ‘가지 눈’이라 한다. 그 외 잎과 꽃의 양쪽이 모두 들어 있는 것을 ‘섞임 눈’이라 하고, 가지 끝에 붙어 있는 것을 ‘끝눈’, 잎겨드랑이에 붙어 있는 것을 ‘곁눈’이라 부른다. 겨울눈은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겉이 단단한 비늘조각(鱗片)과 털로 덮여 있다. 또한, 수지나 점액을 내뿜어 추위를 막고 상처를 예방하기도 한다. 잎과 뿌리로 겨울을 보내는 식물은 잎을 방석처럼 펼쳐서 땅에 납작하게 붙어 햇빛을 많이 받아 겨울의 강한 바람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런 식물은 대부분 초본식물이다.(출처: 다음 백과)

겨울눈 이야기를 들으며 1시간 정도 걷다 보면 2차선 도로가 앞을 막는다. 이 도로는 광양읍에서 봉강면 하조마을로 오고 가는 차도이다. 둘레길은 도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7~8분 정도 가면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개룡마을 입구 계룡산장까지 간다.

개룡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개룡마을 뒤쪽에 있는 계족산의 동쪽 골짜기에 개룡사(開龍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거기서 연유된 것으로 전해진다. 계룡산장에서 둘레길은 도로를 넘어 새로 생기는 해랑 마을 담벼락(철조망)을 지나 봉강계곡을 따라 신촌2교 밑에서 둑길로 올라가 다시 도로를 만나면 바로 왼쪽 신촌교를 지나 신촌마을 앞 보호수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간다.

신촌마을은 바구산 자락에 달린 마을로 옛날부터 약초와 띠풀이 많아서 띠밭 골로 부르다가 한자의 의미를 부여해 신기촌(莘基村)이라 불렀다고 한다. 나중에 기(基)자가 고상하지 못하다 하여 기를 빼고 신촌(莘村)이라고 했단다.

신촌마을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강희보∙강희열 의병장 이야기가 있다. 두 의병장은 이 마을 강 천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1593년 6월에 왜군이 10만 대군으로 진주성을 공격하자 희보는 아우인 희열과 진주성으로 달려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그 후, 조정에서 희보∙희열 형제를 진주 창열사에 배향하였고, 영조 40년에는 희보에게 호조 좌랑(정6품)을, 희열에게 병조참의(정3품)가 추증(追贈)되었다.

둘레길은 그들의 넋을 기리는 사당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 묘소도 지난다. 그리고 바구산 등산로를 따라가다가 편백 숲 갈림길에서 하조마을(0.99㎞) 방향으로 간다. 편백숲을 빠져나오면 시야가 밝아지면서 하늘이 열린다.

둘레길은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있어 길 찾기가 쉽다. 그리고 계곡 앞에서는 계곡을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딱 붙어 논둑을 따라 걸어야 한다. 논둑 끝에서는 이정표와 바닥의 흰색 화살표 방향(왼쪽)으로 몇 걸음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약 10여 분 걸어가면 하조마을 시내버스 종점이다.

하조마을은 마을 형상이 새(학)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것과 본래 여러 성씨가 마치 새처럼 혼성하여 살고 있다 하여 ‘새재’,‘조령’,‘조치’라고도 불렀다 한다. 둘레길 7코스는 이곳에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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