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때문일까.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책들의 출판이 이어지고 있다. 수전 제이코비의 『반지성주의 시대』가 나의 시선을 끈다. 결론은“국민이 반지성주의에 빠진다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공교육의 실패로 대중의 지식수준이 낮아지고 있단다. 지구온난화에 무관심하고, 선진국 중 유일하게 많은 국민이 진화론마저 주류과학이 아니라고 믿으며,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 종교관과 더불어 비합리성과 반지성을 양산하고 있다 꼬집는다. 2008년 부시 행정부 시절 초판을 내며 “인류의 지적자산과 논리를 추잡한 정치용어로 전락시키고, 책과 문화를 멀리하며 미국이 지옥문이 열리고 있다” 주장한 후 2018년 개정판을 낸 것이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자. 국민적 신뢰가 높은 지성인 전 대법관 김영란 양형위원장의 최근 저서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에 소중한 상황인식이 보인다. 저자는 국가발전의 동력을 경의와 숙고에서 찾는다. “경의란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는 지도자의 덕목이고, 숙고란 지식이 미흡한 상태에서도 좋은 결정에 힘을 모으는 민중의 능력을 말한다.” 경의 없는 엘리트들의 왜곡된 논변이나 각종 형태의 사익에 편승하는 대중의 편향된 결정은 국가를 불행으로 이끌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이 선택한 민주 정부의 권위를 넘어서려는 사법 엘리트들, 진실의 보도보다 편 가르기와 지분확보에 바쁜 언론과 그 종사자들, 아시타비(我是他非) 즉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며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보다는 비방과 폭언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의 경의 부족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니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하다. 공감이가는 좋은 글을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인식과 분별 능력이 생기며 지성을 쌓아가고 있다 자위도해 본다. 여기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식별능력을 쌓는다는 자부심도 있다.

요즘 내가 흥미를 갖는 주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서양 사람들은 소크라테스•플라톤에 서부터 성서까지 질병을 끼고 사는 육신을 폄하하고 정신의 고매함을 찬양하였다. 서양의 정신이 주는 상상력은 대항해시대를 열며 신대륙을 찾아내어 국력을 획기적으로 쌓으며 수탈의 힘을 키우고, 산업혁명 등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며 그들의 우월성을 강변한다.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 천당과 지옥까지 이야기하며 자신들 신의 우월성을 우기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억측은 지구상에 수많은 분쟁과 전쟁, 살상의 역사를 이어왔다. 자의적 상상은 자신의 바람을 신의 계시로 해석하며 소중한 목숨의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마야인 들은 비를 기원하며 보이지 않는 신에게 이웃의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 바쳤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생과 환생, 지옥과 천당을 상상하며 인도네시아 많은 부족은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한 장례와 제례에 일생 모은 재물의 대부분을 소비한다. 또 다른 부족들은 보이지 않는 환생을 믿으며 없는 미래의 편안함을 위해 소중한 현실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 진심으로 의지하며 맑은 눈망울의 경애심으로 봐야지 탐욕의 눈으로 매연이 부연 세상에서 설혹 있어도 보이겠는가. 과신이나 미신의 역사는 항시 인간에게 큰 아픔을 주고 파멸로 이어졌다. 우매한 인간의 고통이 유적의 웅대함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다 보니 경제적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유튜버들의 호기심을 조장하고 분쟁을 부추기는 가짜뉴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람들도 합리적 사고를 요 필요로 하는 긴 문장보다 행복과 건강에 좋은 말들에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호기심 위주의 짧은 문장을 선호하며 나이가 들수록 유튜브에 매달리는 것도 같다. 문제는 자기 편향적인 듣기 좋은 말들을 지향하고 여기에 공감과 확신이 보태어지며 인류의 지적자산과 논리력이 무너짐에 일조하며 고집스러운 꼰대로 취급받는다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도 지도자들의 경의심과 국민들의 분별력이 요구되는 때인데도 말이다. 최근 통계 발표를 보면 젊은이들과 어른들의 판단이 극명하게 대조된다는 점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자본주의가 가져온 소득 격차로 세계 부국이라는 미국까지도 8명 중 1명이 간헐적으로 기아에 노출되고 있다고 말한다. 농민을 포함한 저소득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보 정부의 정책에 부정적 견해를 표출하는 노년층에 선뜻 이해 가지않는 대목이 있다. 메리 루플 시인은 “나이가 들면 남들이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만큼 투명 인간이 되는 순간 눈앞에는 무한한 자유의 세상이 펼쳐진다. 내게 이래라저래라할 만한 인물들은 다 사라진 지 오래다.”라고 말한다. 자유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면 누가 소신껏 일하며 국력이 집중될 수 있겠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함부로 믿지 말고 공부로 지성을 키워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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