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진 순천 효천고등학교 3학년

▲ 이종진 순천 효천고등학교 3학년

지난 1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아내이자 동양대 교수인 정경심 씨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사모펀드’에 관해서는 일부 무죄 판결을 내렸으나 ‘입시비리’는 전부 유죄판결을 내렸다. 물론 피고 측에서는 1심이 끝난 직후 항소장을 냈지만 ‘입시비리’ 판결을 완전히 뒤집기는 힘들어졌다. 이에 따라 조민 씨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학 취소 여부가 교육계, 정치계를 막론하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입시 부정행위가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산대는 입학 취소를 미루고 있다. 단순히 피고 측에서 항소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라면, 수험생입장에서 눈살을 더 찌푸리게 된다.

‘입시비리’는 이미 정치인이나 재벌가에는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그들에게는 대학원서가 곧 합격 통지서였으며 위엄 있는 대학 총장, 교수들은 아는 삼촌, 이모였을지도 모른다. 나경원 전 국회의원 딸, 최순실 딸 정유라 등 수 많은 기득권층의 자녀와 조카들에게 대학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스펙 쌓기였거나 스스로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화장을 하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이 타인에게 매력있게 보이도록하기 위함이었을까? 그들은 ‘입시전쟁’이 무엇이고 ‘취업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층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유리창을 자각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미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노력과 성공의 상관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실의 열매와 무관한 절망의 나락으로 이끄는 사회의 부조리를 긍정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현대 단편소설 ‘강’에 나오는 ‘김씨’도 이런 부조리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다.

전남 순천 태생인 서정인 작가의 단편 소설 ‘강’은 1960년대의 어느 겨울, 군하리라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버스 안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결혼식에 가는 길인 ‘김 씨’, ‘이 씨’, ‘박 씨’ 세 사람과 버스에서 만난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의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삶을 다룬다. 이들은 모두 현실에 좌절당한 사람들, 부정적인 시선에서 본다면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특히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선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라는 그의 작중 독백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천재가 오만한 낙오자로 전락해가는 과정이었음을 절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 가난한 천재가 열등생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단순히 노력의 부족 혹은 선천적인 재능 부족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 그렇기에‘김 씨’는 ‘되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상실’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되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취’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갈취는 되찾을 수 없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학입시를 비롯해서 군 특혜 의혹, 취업 낙하산, 주가 조작까지 그 범주는 넓고 그 끝은 대한민국을 전부 들춰내야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비리들과 정경유착은 지상에 뿌리 내려 반만년동안 쌓아왔던 양분을 빨아들인다. 그 결과, 양분을 얻어 자라나야 할 새싹들은 말라 죽고 다 큰 나무들은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영원하리라 여겨졌던 나무들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남은 한 그루의 나무마저 죽는다면 그 땅은 죽은 땅이 될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새싹이 성장하여 또 다른 숲을 이루었겠지만 이들은 전대 거목들이 생전에 이미 씨를 말렸다. 이것이 곧 이 땅의 현실이고 미래이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촛불혁명으로 시민의식이 고양되면서, 수많은 사회악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그중 대부분이 철폐되었다. 하지만 어둠은 언제나 황혼의 끝자락 어딘가에 숨어서 빛이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느슨해지는 틈을 타 그들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거다. 흑은 백이 될 수 없는 듯이 그들의 본질은 시대가 바뀐다 해서 변하지 않는다. 다만 몸을 사릴 뿐이다. 사회개혁을 가장한 위선에 속으면 안 된다. 대중과 정치 세력은 항상 대립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망각해선 안 된다. 역사 이래로 그들과 우리의 관계는 영주와 농노였고 자본가와 노동자였으며 극단적으로는 주인과 노예였다.

방학 보충 수업 중 국어 선생님께서 은퇴를 앞둔 다른 선생님과 전날 있었던 대화를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은퇴를 앞둔 선생님의 말씀은 이러했다. “0~30세까지는 자신을 연마하는 연마기이고 30세~60세까지는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시기이며 60세 이후부터는 나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는 시기인 것 같다” 이 말씀을 듣고 국어 선생님께서는 인생의 가장 황금기인 30~60세를 단지 가족만을 위해서 사는 게 맞는지 되묻고 싶으셨단다. 또한 사회적·역사적 의무를 저버린 채로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삶이 과연 옳은 삶인가 따지고 싶었지만 마음에 담아두셨다고 한다.

국어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자유와 권리가 있고 이를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잘 꾸려나갈 의무도 지닌다. 더 나아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된다.

흔히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을 표현할 때 강의 흐름에 빗대어 ‘시류’라는 단어를 흔히 쓴다. 우리나라 역사를 시류에 비유하면, 반만년 전 백두산에서 발현해서 강의 상류와 중류를 지나 하류 즈음 온 듯싶다. 하류는 온갖 부패물들이 뒤섞여서 탁류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커다란 바다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과정이다. 수많은 부패물과 퇴적물들에 막혀 하류 한 켠에 고인 썩은 물이 될지, 망망대해로 뻗어나가 온 세상을 누비게 될지는 우리의 관심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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