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서 여관에 들다 - 정세기

고향에 가서 여관에 들다
정세기


늦은 성묘 길에
술 한잔 걸치고 들어간 여관
창가에 수양버들 가지 휘늘어져
네온 빛에 젖어 흔들리는
이곳은 옹기전이 서던 자리였지
볕바른 곳에 앉아 빛나던 오지그릇처럼
우리도 투박하게 빚어져 팔려가서는
슬픔도 희망도 버무려 곰삭이다가
이렇게 돌아오기도 하는 게지
내가 짝사랑한 눈매 고운 고 기집애는
남편 따라 나선 장삿길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데 그래
더러는 낯선 얼굴로도 돌아오지 못할 곳
몰래 오줌을 갈겨대던 항아리 대신
양변기를 마주하고 섰는데
빼액 울고 가는 기차소리에 내다보니
창문 두들기는 바람에 스치는 별빛도 바래
대밭 위로 쏘아 올린 옛 꿈마저 찾을 길 없고

 

※ 시인 정세기

  1. 년 전남 광양 옥곡면 출생
  1. 년 <민중시> 5집

시집 <그곳을 노래하지 못하리> 외 다수

  1. 년 9월 졸

 

1980년대 민중시의 흐름을 이어 사회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고 열정적으로 짚어온 정세기 시인은 2006년 9월 11일 늦은 11시 22분 45세 짧은 생을 접고 서둘러 하늘길을 걸어갔습니다.
시인은 1961년 광양군 옥곡면 금촌마을에서 출생해 1989년 <민중시> 5집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으로 <어린 민중>, <그곳을 노래하지 못하리>, <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를 상자하는 등 교편을 잡던 중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갔지요. 무엇보다 심근경색을 이겨내고도 또다시 2006년 뇌종양에게 생을 집어삼키는 동시집 <해님이 누고 간 똥> 등을 출간하는 질긴 호흡을 보여줬습니다.
<시의 지평> 동인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한 시인은 1994년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투병, 한 차례의 수술 이후 완치돼 교단에 복귀해 후학 양성에 열정을 쏟았으나 2004년 뜻밖의 뇌종양 판정을 받고 최근까지 혹독한 투병 생활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암세포로 인해 자판이 보이지 않고 글씨를 쓸 여력이 없을 때에도 가족들에게 구술로 시와 동시를 받아 적게 하는 등 창작 의지를 잃지 않아 그 결실이 2006년 봄 <창비>에서 출간된 동시집 <해님이 누고 간 똥>에 고스란히 배어나 있지요.

교육문예창작회원이자 동료 시인인 최성수에 따르면 생전 그는 거구의 몸집을 지닌 사람이었나 봅니다. 최성수는 “보통사람보다 목 길이 하나쯤은 더 붙어있고 덩치도 빠지지 않을 만큼 된다. 그래서 처음 그를 보면 시인이라기보다 운동선수 같은 느낌이 든다”며 “그러나 조금 그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게 되면 그만큼 여리고 섬세한 사람도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속으로 슬픔을 숨기고 있어 그런 것이리라”고 했지요. 단 한 번 그를 본 적이 없으나 그 생김과 성품이 한눈에 읽히는 듯도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놓은 시 <고향에서 여관에 들다>는 고향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나 고향의 모습은 안온하지는 않습니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갈 곳이 없었던 그가 여관에 들었다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고향은 그닥 편안치 않습니다. 이미 고향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고향은 벗들이 사라지고 뿔뿔히 흩어진 가족사의 상처만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어릴 적 뛰어놀았던 들녘과 산하는 급격한 성장 속에 옛 모습을 잃어버진 곳이지요.

다시 최성수의 입을 빌리면 그에게 고향은 슬픔이었습니다. 최성수는 “그에게 고향은 그리운 곳, 돌아가 안길 곳이 아니라 상처와 고통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추억의 자리이기도 하다”며 “이 이중성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상처를 자극한다”고 했습니다.
한편 초등학교 교사로 시인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로 세상을 서둘러 다녀간 정세기 시인의 죽음이 10년쯤 흐른 뒤 2015년 모교인 옥곡초등학교 교정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습니다. 동시집 <해님이 누고 간 똥>에 담긴 동시 <모락모락>입니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그의 눈은 참 선했던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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