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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일상 그립다코로나19로 자가격리 세 번 경험한 영웅 씨
최인철  |  hwakae72@gyci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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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22  09: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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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영주 꿈꾸다 코로나19 차별에 분노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감염증 국내확진자가 2월 19일 기준 8만5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사망자도 1540여명에 이르는 등 피해가 만만찮은 상황이다.

우리 지역 역시 97명에 이르는 확진자가 나오면서 밀착접촉자를 포함해 3만7700여명이 검사를 받았으며, 자가격리 대상 역시 3140명에 이르는 등 여파가 상당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상은 꽁꽁 얼어붙었다. 강한 전파력으로 언제 어디서든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모임에 대한 두려움 역시 확산됐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됐고 심리적 위축은 공포에 가까운 상황이다.

코로나19 감염증 발생 이후 세 차례 자가격리를 경험했던 정영웅(28) 씨는 지금도 바깥출입이 두렵다. 그 어떤 곳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체득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밀착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되면 본인은 물론 가족 역시 고통을 함께 겪고 견뎌야 했던 건 좀처럼 잊지 못할 뼈아픈 경험이다.

▲ 코로나19로 자가격리 세 번 경험한 정영웅 씨

이민까지 꿈꿨는데...
뉴질랜드 인종차별 불러온 코로나19


영웅 씨는 “밀착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에 들어가자 직장을 다니는 부모님과 여동생을 바라보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에 마음 아팠다. 잘못한 게 없는데 마치 죄인과 죄인의 가족이 된 느낌이었다”며 “눈물이 날 만큼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전했다.

직장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영웅 씨의 아버지는 그가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간 뒤 아예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호텔에서 지냈다.

앞서 밝힌 대로 영웅 씨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모두 세 차례의 자가격리를 경험했다. 흔치 않은 경우다. 태어나 광양을 떠나본 적이 없는 그는 제대 이후 취업 준비를 하던 중 2017년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뉴질랜드로 건너간 뒤 카페매니저로 취업해 3년간 바리스타와 직원 관리업무를 맡아 일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잠깐 귀국했다. 입국 절차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성이 크게 알려지지 않던 때였다. 광영동에 있는 가족과 요양시설에 모신 할머니를 살펴보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그러나 떠나올 때와는 달리 다시 돌아간 뉴질랜드는 락다운 상태였다. 병원 등 필요 시설이 아닌 경우 대부분 문을 닫도록 했다. 코로나19 모범국으로 꼽히는 뉴질랜드는 초기 코로나19 대응으로 강력한 봉쇄령과 일상생활을 규제하면서 조기 차단에 들어간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 차원의 자가격리 지침이 내려지진 않았으나 직장에서 권했다. 직장 권고대로 숙소에서 머물면서 식료품 등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를 가는 것 말고 외출은 삼갔다.

그런데 자가격리를 끝내고 다시 출근한 직장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마스크를 쓴 채 일하는 영웅 씨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마치 마스크는 환자들만 쓰는 것이라는 인식에다 마스크가 코로나19 확진을 의심하는 풍토가 강했다. 집을 오가며 정을 쌓았던 백인 친구들마저 거리를 뒀다. 안전을 위해 쓴 마스크를 바라보는 뉴질랜드 사회의 시선은 싸늘했다.

무엇보다 중국 우한이 코로나19 발원지라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뉴질랜드는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글로벌이라는 가면 뒤에 숨긴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타고 그 모습을 드러낸 듯 싶었다.

일부 백인들은 길을 가는 중국인을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했고 아시아인들이 사는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등 위협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영웅 씨가 한국을 떠나 평생 살고 싶었던 땅, 뉴질랜드의 민낯은 그러했다. 귀국을 결심한 이유다.

4월 8일 귀국길에 올랐다. 항공기 전 노선이 통제된 상황이었으나 뉴질랜드 한인회가 어렵사리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정부를 설득해 마련한 마지막 임시운항편이었다. 비행기는 저녁9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도 코로나19 대응에 혼선을 빚고 있던 탓인지 해외입국자 관리는 여전히 허술했다. 식당도 가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면서도 정작 숙소는 물론 음식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 영웅 씨의 검진 결과를 알리는 문자

해외입국 2주간 격리생활
허물어진 일상에 대한 두려움


할 수 없이 공항 측이 별도 제공한 장소에서 이튿날 아침 7시까지 벌벌 떨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동안 지급된 것이라곤 고작 생수 한 병이었다. 춥고 굶주리다 보니 뜨끈한 컵라면 한 그릇이 간절했다.

이후 방역당국이 마련한 특별버스로 광명역에 도착해 KTX 해외입국자 전용 칸을 타고 구례역에 도착해 곧장 해외입국자 임시검사시설로 지정된 구례농협교육원에서 검진을 받은 뒤 결과가 나올 때까지 2박 3일을 머물렀다.

인천공항보다는 훨씬 나았으나 모든 창문에 창살이 달린 감옥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인 건 비로소 한 끼 밥 같은 도시락이 나왔다. 악운이 이어진 것인지 영웅 씨의 검진 결과가 유독 늦어 혼자 3일을 머문 뒤 음성 판정을 받고 격리시설인 백운산 광양제철수련관으로 이동했다.

격리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이미 뉴질랜드에서의 격리를 통해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방법을 터득한 까닭이다. 적절한 숙면과 운동이 필요했다. 수면시간과 운동시간을 정해생활했다.

영웅 씨는 “격리생활 중 큰 불편은 없었다. 시간을 정해 운동을 했고 수면시간은 꼭 지켰다”며 “다만 광양시가 보낸 구호 물품 중 컵라면이 있었는데 포트나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없었다. 프런트에 부탁해도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입국 이후 그렇게 먹고 싶던 컵라면을 앞에 두고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고 멋쩍은 웃음을 매달았다.

이어 “사실 가장 힘들었던 건 혼자 있으니 잡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걱정도 산처럼 쌓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계획했던 모든 것이 일순 허물어졌다”며 “그래도 막막한 미래를 위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취업 교육 등 격리 해제 후 계획도 세웠다”고 말했다.

2주 격리 후 영웅 씨는 비로소 제철수련관을 벗어나 주변 둘레길을 걸었다.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게 이토록 소중한 것인지 새삼스러웠다. 땅냄새, 풀냄새, 나무를 오르는 다람쥐마저 반가웠다. 땅을 밟고 걷는 소중한 일상의 무게가 남달랐다. 아버지와 함께 광양 읍내에서 먹은 국밥 한 그릇은 달고 달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그 일상이 고마웠다.

▲ 영웅 씨의 검진 결과를 알리는 문자

세 번째 격리
조심해도 피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듯한 영웅 씨의 일상은 또 한 번 어긋났다. 격리 중 계획했던 일·한식 조리사 자격증과 무역영어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오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전남 동부권 2차 대유행 조짐이 심상찮던 시기, 함께 요리를 배우던 학생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폭탄을 맞은 것 같은 소식이었다.

영웅 씨는 “격리 해제 후 친구들도 멀리하고 학원과 집만 오가며 극도로 조심했는데 또다시 격리돼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한순간 원망도 일었다”며 “코로나19는 이제 우리 곁에 항상 머물러 있는 공기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격리에 들어가자 무엇보다 가족들이 받는 상처가 힘들었다”며 “잘못한 게 없는데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자가 격리자가 겪는 심정이 이런 데 생활하다 확진된 환자와 그 가족의 심정은 어떨지 이해가 됐다”고 털어놨다. 영웅 씨는 현재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일상을 포기할 만큼 조심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웅 씨는 “코로나는 누구든 알 수 없는 경로로 감염될 수 있다. 그러나 조심해서라도 그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에서 취식이나 대화는 자제하고 마스크는 꼭 사용하는 것이 가족 간 전파도 막아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건소, 담당 공무원, 의료진, 구급대 등 주변에서 너무 고생이 많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고 토로한 뒤 “친구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그립다. 하루 빨리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일상 속에서 편하게 친구들에게 오늘 만나자’는 전화를 넣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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