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늬의 풀잎에 드는 햇살

네 살 박이 꼬마 결이는 습관처럼 말끝마다“ 댕(다행)이다”를 달고 산다. 내가 지네 집에 놀러라도 갈라치면“ 아줌마 놀러와서 참 댕이다” 라고 의례껏 오프닝 멘트를 날리곤 중간중간 어른들의 놀이에 끼어들어 ”다행”이란 추임새를 적절하게 넣어주는 참 센스넘치는 실력파 꼬마 고수(鼓手)다. 차를 마시고 있으면 차 마시고 있어 다행이다, 이야기하다 웃으면 웃어서 다행이다, 하다못해 집에 가려고 나서면 “아줌마가 가서 댕이다(?)”며 끝까지 다행이다를 달고 사는 것이다. 그럼 나도 질세라 ”결이가 다행이란 말을 해줘서 다행이다”며 기특함의 찬사를 으스러지지 않을 만큼 꽉 안아줌으로 대신한다.

녀석이 다행이다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배경을 따져 보면 결이 엄마의 양육태도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결이가 밥을 깨작거리면“ 아이구 우리 결이 밥을 조금이라도 먹어서 다행이네” 졸려서 떼부려도“ 다
행이다.우리 결이 쑥쑥 크려고 떼쓰는 구나” 심지어 된통 넘어져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다행이다. 무릎밖에 안 까여서!”등 등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그러니 결이는 은연 중에 엄마의 다행이다 화법과 긍정의 가치
관을 체득하게 된것이지 싶다. 결이네는 그래서인지 크게 가진 것 없이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행복해 한다.

오래전 천양희 시인의“다행이란 말”로 어머니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환승역 계단에서 그녀를 보았다 팔다리가 뒤틀려 온전한 곳이 한군데도 없어 보이는 그녀와 등에 업힌 아기 그 앞을 지날 때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돈을 건넨 적도 없다. 나의 섣부른 동정에 내가 머뭇거려 얼른 그 곳을 벗어났다 그래서 더 그녀와 아기가 맘에 걸렸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늦은 밤 그곳을 지나다 또 그녀를 보았
다 놀라운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바닥에서 먼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자, 집에 가자 등에 업힌 아기에게 백년을 참다 터진 말처럼 입을 열었다 가슴에 얹혀 있던 돌덩이 하나가 쿵, 내려앉았다 놀라워라! 배신감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멀쩡한 그녀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두부 사세요 내 마음을 건넸다 그녀가 자신의 주머니에 내 마음을 받아넣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짓고 국을 끊여 아기에게 먹일 것이다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뼛속까지 서늘하게 하는 말, 다행이다

살아가면서 자기 생애 잊을 수없는 다행이었던 순간을 주제로 글을 쓰는 시간이었는데 글쓰기 전 천양희시인의 시’다행이란말’을 글맛보기로 읽어주며 각자의 감상과 엮인 얘기들을 들어 보기로 했다. 어머니들
의 의견은 정확히 둘로 갈렸다. 비도덕적, 비윤리적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라는 부정적인 시각과 그래도 그렇게라도 살아갈 방편을 마련하고 있어서 다행이다란 긍정적인 시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그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란 극단적인 말까지 나왔다. 난 섣불리 끼어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었지만 내심“ 다행이다”란 의견쪽으로 이미 마음은 기울고 있었다. 갑론을박 더 거론할 것도 없이 천양희 시인의 시가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일은 자로 잰듯 맘먹은 대로 살아지진 않는다. 아기를 업은 엄마가 빽 없고돈없고 힘없는 아닌 말로‘ 없는 것만 다 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그녀가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세상 줄을 놓지 않고 살아가려 애쓰는 그 모습이 눈물겹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근에 딸아이가 엄말 즐겁게 해줄 것 같다고 봄선물이라며 유투브 화면을 다운로드해서 보내왔다. 조회수가 10만건을 훌쩍넘은 동영상을 감상한 내 소감은“ 다행이다” 딱 이 한 마디였다.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 십대 고등학생 아이들이 찍은 몰래 카메라! 아이들은 선생님의 감시를 피해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틀어놓고 립씽크를 하며 한 바탕 신명나게 노는 것이었는데 동작만으론 가수 뺨치게 멋들어졌다. 세 아이가 한
아이는 망을 보고 한 아이는 연출에 한 아이는 신들린 지휘까지 해가며 각자 맡은 파트를 폼나게 연출해내는데 참으로 신선하고 예쁘지 않을 수 없었다.“ 짜식들이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황금 같은 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뭐하는 짓들이야! 엉?” 이렇게 딴지 거시는 분들, 자신들의 십대를 생각해보시라.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럽게 그 시절을 통과해 왔는가.

“마음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라” 아름다운 저 청춘들을! 난 아이들의 소리없는 수다에서 그들의 건강한 배설의 욕구를 읽을 수 있어 참 좋았다. 그뿐인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그야말로 자율적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학습하고 있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이들은 지나치게 명민하고 지혜로웠다. 자기들의 고통을 고통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이 창안해 낸 유희 학습을 통해 평화롭게 채널을 재정비하고 행복하게‘ 이 자리(학생)’라는 명제로 되돌아올 것임을 그들 스스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지면으로 그들의유쾌 통쾌 상쾌한 자율 학습 장면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심히유감이다.

궁금하시면 아래 싸이트에 한 번 들러 보시라. 절대 후회없는 명불허전, 자율학습을 참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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