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실 참교육학부모회 광양지회 정책실장

▲ 박영실 참교육학부모회 광양지회 정책실장

1919년 3월 27일(음력 2월 26일) 그날은 광양 장이 서는 날이다. 나를 포함한 ‘광양 3⦁1운동 답사팀’은 광양 장 한가운데에 섰다. 우수도 경칩도 지난 따뜻한 봄날, 광양 장은 광양 군민들로 북적거린다. 아무 일도 없는 듯 모두의 얼굴은 바쁜 일상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물꼬를 튼 3⦁1만세 시위는 곧 들불처럼 번져, 3월 10일 광주에서 그리고 인근 순천, 여수, 구례로 번져오는 3⦁1만세 시위를 익히 들어 알고 있기에 그날 광양 장날은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광장에서 만난 광양 군민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술렁거렸고, 장을 보러 나온 군민들을 쏘아보는 일본 헌병의 눈에는 겨울 찬바람이 일었다.

그날의 장날은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숨 막힘이 장터를 배회했다.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오늘 광양은 그냥 넘어가려나’ 그런데 오후 3시 30분경, 많은 사람이 모인 시장 한가운데에서 옥룡면에 사는 유생 정성련이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 장대에 매고는 머리 위 높이 들고 휘두르며 군중들을 향하여 ‘만세! 만세! 대한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세 번 부르니, 여기저기서 폭발을 준비하고 있었던 화약들처럼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군중들의 얼굴에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일제 폭압에 대한 저항과 독립에 대한 가열찬 열망으로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순찰하던 헌병에 의해 정성련은 붙잡혀 옥고를 치뤘으며, 군중들은 강제 해산당했다. 영화 같은 하루가 저물어 갔다.

이분이 광양 3⦁1만세 시위를 주도했던 ‘만세 할아버지’ 정성련이다. 광양에서도 1919년 3⦁1만세 시위의 명맥은 이어졌다. 광양 3⦁1운동 답사팀은 그날의 기억을 따라 ‘광양 3⦁1운동 만세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책상 앞에 앉아 관련자료만 읽어도 그만일지 모르나 그곳에 가면 그 현장에 있었던 삶 자체를 만날 수 있다.

머무는 시간은 잠시일지라도 그 시간은 비로소 나와 옛사람이 만나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다. 그리고 그 만남은 역사적 상상력으로 답사팀에게 생생한 소통의 공간이 된다. 그들의 삶이 내 삶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과거는 한낱 박제된 죽은 생명체 일뿐이다. 두 발로 걷는 답사가 있는 역사는 ‘앎과 삶이 만나는 배움’이 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앎’이 가슴에서 발까지 나아가며 ‘삶’과 만나는 배움이 이루어진다.

광양 읍장에서 옥룡면 추동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부터 바람에 나부끼는 태극기가 우리 답사팀을 맞아주었다. 그곳에는 ‘정성련 3⦁1운동 기념비’가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들은 우리 역사의 결정적 장면들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기억을 되살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면 상징화 작업이 필요하다. 기념비 앞에선 우리 답사팀은 마음이 숙연해진다. 일본 경찰의 감시 속에서 마침내 단독으로라도 군중을 인도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홀로 한지로 만든 태극기를 가슴에 품었을 것이다. 만세 할아버지의 고심이 전해져 왔다.

광양의 3⦁1만세 시위는 정성련을 필두로 인덕면의 학생들이 4월 1일 다음 장날을 이용한 만세시위를 계획했고, 또 이날 옥룡면 김상후는 음식점에서 독립만세운동의 당위성과 독립의지를 역설하였다. 이로써 우리 광양도 얼마나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곧이어 ‘칠의사 3⦁1운동 기념비’가 있는 광양 옥룡초등학교 교정으로 이동하였다. 칠의사는 1919년 4월 5일 독립만세를 외치며 읍내로 가다 체포된 옥룡면 운평리에 있는 견룡재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다. 옥룡초등학교를 나와 광양읍 쪽으로 내려오면 광양읍 유림회관 앞에 ‘오의사 3⦁1운동 기념비’가 있다. 이는 1919년 4월 4일에 광양읍 시장에서 일어난 두 번째 광양 3⦁1만세시위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또 광양읍 우산리 내우마을의 천도교인 김희로와 진월면 송금리 송현마을 임태일 등 광양의 민중들은 거족적인 3⦁1만세시위의 물결 위에 함께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산공원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답사를 마무리한다. 이번 답사의 목적은 우리 민중들의 자주적인 삶과 그들이 전개한 사건들, 그리고 그 의미와 가치를 직접 체험하며 시민, 학생들에게 잊혀져가는 우리 고장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의미 있는 문화답사가 되었다.

영화, 광고, 사진,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속에서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은 글로 읽어 몰입하기는 역부족이다. 시각적으로 재현되고 영상으로 구체화 되는 작업이 필요하다. 좀 더 대상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는 ‘역사 사진전’이나 광양읍장 입구나 인동숲에 ‘광양 3⦁1 만세시위 부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제 답사를 마친 우리는 광양 3⦁1만세시위가 그저 역사책 속에 글자로 남아 있지 않고 많은 이들이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치루고 이루어 낸 아주 구체적인 삶의 한 부분으로 광양3⦁1만세운동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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